직선제의 폐단을 없애겠다는 생각으로 규정과 절차를 무시하고(법정에선 승리했지만 최소한 필자가 보기에는 그렇다) 의약분업 투쟁 당시 회원들의 염원에 의해 변경됐던 직선제를 순식간에 뒤집어 엎고 시행하는 의협회장 간선제가 그야말로 가관이다.

도대체 직선제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몰라도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간선제를 만들기 위해 너무도 애를 쓴 나머지 아이러니 하게도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방식이 되고 말았다.

우선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인단 선출부터 보자. 선거인단은 자기가 속한 단체를 대표해서 투표장에 나가는 사람인데 그렇다면 단체의 뜻을 전달하는 대변자라는 의미가 된다. 그렇게 본다면 선거인단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선거인단 후보들은 자신은 누구를 지지하겠다는 것을 표명하고 일반 회원들의 신임을 물어서 선정되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과정 없이 선발되어 버렸다. 그러니 이번 선거의 선거인단은 지역과 직역의 대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의견을 반영하는 사람일 뿐이다. 이렇게 되다보니 비록 숫자는 적어도 충성심 강한 사람이 전국적으로 고루 포진하고 있는 조직력만 갖고 있으면 회원 대다수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 후보가 아니라도 너끈히 회장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선거인단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의 명단이 중앙 의협에서부터 파악되어 내려왔는데도 불구하고 뭘 그리 회원들을 못 믿는 것인지 선거인단이 되기 위해서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너무 많다보니 대다수의 회원들은 관심이 있어도 서류 제출이 귀찮아서 나서지 않고 그렇다보니 엄청난 사명감이 있거나 특정 후보와의 긴밀한 관계가 있지 않고서는 과연 누가 선거인단에 나설까싶다.

또한 선거일이 일요일인데 지방의 경우는 선거 전날 내지는 당일 새벽에 상경해서 선거에 참여해야 하니 당연히 어떤 지역은 그동안 의사회 활동을 열심히 하던 회원들은 나서지 않고 그야말로 어떤 목적을 띄고 생면부지의 회원이 나서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압권은 또 있다. 1차 선거에서 과반수를 넘는 후보가 없으면 가장 많은 득표를 한 두 명의 후보가 2차 선거를 치루는데 이는 당연히 1차 컷오프를 통과하는 경우와 아닌 경우를 놓고 후보간에 사전 야합을 부추키는 꼴이 된 것이다. 또 1차 선거에서 2등 하고도 탈락자들과 협상만 잘하면 회장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아서 선거 후 후유증과 시비 거리가 발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

선거인단 선거를 통해 직선제의 폐단을 없애고 간선제의 효과를 십분 발휘하겠다는 열의가 지나쳐서 코미디 같은 선거 제도를 만들어 낸 대의원회와 선관위에 박수(?)를 보내는 바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대의원 조직인지 모르겠다. 이래서 대의원 조직은 반드시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박종훈
고대의대 정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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