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살다 들어온 사람들 중에 무상의료에 관한 찬사를 하는 분이 있다. 그 나라 시민이 아니고 공부하러 갔거나 근무하러 갔을 뿐인데도 ‘의료비가 공짜’라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의사를 비롯한 의료진들의 친절 또한 빼놓지 않는다.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의료비가 비싸고 의료진이 불친절하다’는 뜻이리라.

한국은 의료비 비싸고 불친절(?)
일부 의사들 중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 대개 영국에서 공부 한 분들이다. 영국은 의료기관이 모두 국공립이다. 개인의원이 있기는 하지만 보험이 안 되니 의료비가 비싸서 부자들이나 간다.

대부분의 의사는 공무원이나 마찬가지이고 병원들도 국가가 운영하는 셈이다. 병원을 세우는 데 드는 돈도 세금이고 의사들의 월급도 세금으로 준다. 병원이나 의사가 진료비에 신경 쓸 일이 없다.

하루에 환자 10명을 진료하나 100명을 진료하나 월급에 큰 차이가 없다. 병원이 적자가 나도 국가가 충당해 주니 환자가 적다고 큰일 날 일도 없다. 100명 진료하느라 수고하느니 10명을 진료하는 것이 수월한 일이다. 친절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은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도 비슷하고 독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거기다가 그 나라들은 대학교육이 거의 공짜이다. 의사들도 세금으로 공부한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의료비가 공짜(?)
우리나라에서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등록금 중에서도 제일 비싼 등록금을 내야 한다. 졸업 후 병·의원을 짓고, 운영하는 비용도 은행에서 빌려야 한다. 의사를 길러 내거나 의료기관 설립에 별 도움이 없는 정부가 의료비에 관해서는 빅브라더 못지않다. 세금으로 의료비를 내주는 유럽보다도 더 사회주의적이다. 우스운 일이지만 현실이다.

영국과 같은 나라의 문제는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시간을 많이 소비하다보니 의사의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수 일에서 심하면 수 개월을 기다려야한다는 점이다. ‘앓느니 죽는 것이 낮다’는 속담이 남의 일이 아니다. 위험한 수술이나 시술을 꺼리고 새로운 의료기술의 개발이나 도입에도 소극적이다.

영국이나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나라가 나라 수준에 비해 의료의 질이 떨어지는 이유다.

무상의료, 의료 과소비 초래 우려
영국이나 유럽같이 세금으로 유지되는 의료보장제도가 아닌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제도 하에서 ‘무상의료’는 의료의 과잉소비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의료소비를 늘리면서 의료비 증가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데 불행히도 분위기는 ‘무상급식’을 시작으로 ‘반값등록금’을 넘어 ‘무상의료’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지출이 수입보다 많으면 파탄이 난다. 문제는 누가 먼저 망하느냐이다. 우선이야 병의원이 망하겠지만 그 다음은 의료시스템이 붕괴될 테고 결국은 나라가 거덜 날 수밖에 없다. 이제 그 죽음의 서곡이 시작되었다.

<의약평론가>

김형규
고려대의대 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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