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2500년전 만들어진 히포크라테스선서의 내용은 당시 상황에서 매우 파격적인 개혁선언이었다. 당시에는 무분별한 낙태가 성행했었기에 낙태를 금지하는 선언을 했다. 독약을 함부로 처방했기에 독약을 처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의료의 역사를 살펴 볼 때 파격적인 개혁이 있을 때마다 의학은 발전해왔고 환자들의 생명은 보호되어 왔다.

19세기 오스트리아의 제멜바이스가 산욕열을 막기 위해 의사들이 손을 씻고 산모를 치료해야한다고 주장한 것은 당시 의사들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불행하게도 그는 당시 무지한 의료권력층에 미움을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내 두 눈으로 산욕열을 정복하는 행운의 시대를 보지 못하더라도 나의 죽음은 곧 그 시대가 오리라는 확신으로 빛날 것이다”라는 말로 자신의 책에 썼다. 진실을 위한 의료 개혁의 불씨를 후세에게 남겨 준 처절한 외침이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의사들의 개혁의 불씨는 역사와 함께 전해져 내려 왔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개혁의 불씨를 살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의사들은 의학에 대한 전문지식과 풍부한 현장 경험이 있기에 누구보다도 개혁해야 할 문제점들을 잘 알고 있다. 개혁의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바로 올바른 의료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의료윤리에서 찾을 수 있다. 의료윤리와 개혁은 유사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내가 먼저 주체가 되어 실천하면 칭찬과 존경, 신뢰를 받게 되지만 남의 손에 의해 이끌려 가면 비난과 모욕감, 경제적 불이익이 따라온 다는 점이다. 바로 자율이냐 타율이냐의 문제인 것이다.

둘째로 스스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지켜야만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적절한 가이드라인 없는 개혁이나 윤리적 요구는 또 하나의 왜곡된 권력이 되어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괴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자기희생이 요구 된다는 점이다. 의료윤리와 개혁은 불편하고 힘든 것이지만, 고통 끝에 아름다운 결실을 맺듯이 우리의 수고와 노력을 통해 올바른 의료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최근 의료윤리학회에서 제기한 신의료기술의 임상적용시 발생하는 윤리적인 문제와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의료인 제약사간 윤리지침 발표는 의료계 개혁의 불씨가 됐다. 낙태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나선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의 자정선언 역시 개혁의 불씨를 밝혔다. 다 타버린 재처럼 척박한 개원환경이지만 의료윤리를 바로 세우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의료윤리연구회는 잠자는 동료들의 가슴에 개혁의 불씨를 당겼다. 진실을 밝히고 환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개혁을 외치는 일은 매우 어렵고 고독한 일이다.

하지만 작은 개혁의 불씨가 동료들에게 번져갈 때 어두운 세상은 밝고 환한 세상으로 변해 갈 것이다. 어렵고 위태로운 시대인지라 의료계나 국가적으로나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개혁을 원하고 있다. 개혁은 내가 변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나의 이기적 사고와 권위, 편견과 무례함, 불의한 이익과 기득권을 과감히 벗어버리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개혁을 해야한다고 소리를 내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은 변할 마음이 없고 변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개혁은 이뤄질 수 없다.

‘내가 변해야 우리가 산다. 네가 아닌 내가 변해야 한다. 네가 아닌 내가 죽어야 우리가 산다. 내가 바로 개혁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제멜바이스가 죽어가며 고백한 말처럼 우리의 희생이 열매 맺는 날에는 더 나은 의료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싶다. 더 나아가 의료윤리를 통한 개혁의 불씨가 사회 각 직역에 들불처럼 번져 어두운 대한민국 사회를 개혁할 희망의 불씨가 되기를 소망한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