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의료영역에서의 정의(justice)는 무엇일까? 의료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의료의 수요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어떻게 하면 한정된 의료자원을 정의롭게 배분할 수 있을까?

의료 윤리 네가지 원칙(자율성 존중 원칙, 악행 금지의 원칙, 선행의 원칙, 정의의 원칙)중에 네 번째 원칙인 정의의 원칙은 모든 재화의 분배는 정의롭게 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나 의료영역에서의 정의로운 배분의 정의에 대한 답을 찾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작게는 장기이식의 순서에서 크게는 보험제도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다양하다.

의사들은 이러한 의료자원의 정의로운 배분이 이뤄지는 현장에 항상 있기에 정의로운 배분이 이뤄지도록 이에 대한 기본 철학적, 윤리적 지식을 공부하고 깊은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 분배의 정의(distributive justice)에 대한 철학적 접근 방법이 흥미롭다. 결국 그 어느 접근법도 명쾌한 해답을 주지 못하지만 몇 가지 철학적 논점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정의를 논할 때 크게 공리주의(utilitarianism), 평등주의(egalita-rianism), 자유주의(libertarianism) 세 가지 전급 방식이 있다. 먼저 벤담으로 대표되는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명제에 기초해서 사회전체의 효용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죤 롤스(Rawls)의 평등주의는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의 복지와 편익을 향상시키는데 초점을 맞춘다. 한편 노직(Nosick)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정의라는 이름으로 침해 되어서는 안 되고, 절차의 정의를 지키면 결과의 정의는 자연스럽게 실현된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는 공리주의나 평등주의와 달리, 국가가 사회 구성원의 자발적인 교환에 대한 보장이나 강압, 사기, 강요 등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 이상으로 분배 활동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어쩌면 대한민국 의사들이 보험제도에 대하여 바라는 철학적 접근법은 자유주의적 접근에 제일 호감이 갈 것 같다.

한편 정부의 입장에서 정책을 정할 때는 항상 공리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이들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증진시키는 불평등은 정의의 법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본다. 대한민국이 세계 여러 나라에 자랑하고 있는 단일보험자 제도의 철학적 바탕이다. 현재 건강보험제도가 존재하기까지 의사들의 희생이 없이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들은 이러한 불평등한 희생을 정의의 법칙에 위배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의료보호제도는 죤 롤스의 사회정의론에 기초를 둔 제도로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죤 롤스의 사회정의론에서는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는 사회적 불평등은 정의의 법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간혹 의사들은 의료제도나 보험제도를 논할 때 공리주의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우를 범한다. 하지만 필자는 의사들이 환자의 생명과 자율성보장을 위해서는 칸트의 의무론을 철학적 기초로 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인간은 수단이 될 수 없으며 그 자체로 자율적이고 이성적이고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거나 자율성이 훼손되는 모든 행위는 정의롭지 못하다. 생명윤리, 연구윤리 사상의 기초가 되고 있다.

의료수가를 가장 효과적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의사들이 취해야 할 입장을 어떤 것일까? 우리는 오직 환자들을 위하는 편에 서야 한다. 어정쩡하게 의사가 보험자와 환자사이에 공정한 중재자로 나서서는 안 될 것 같다. 환자의 입장에서 환자를 대변해주는 입장에 설 때에 의사의 주장이 선명하고 힘이 붙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약 보험자의 입장에서 자원의 공정한 배분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우리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퇴색해버리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