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시 의료사고가 발생했는데 의료진의 과실이 없는 경우 병원과 국가가 함께 배상한다.”
참 이상한 말이다. 병원의 과실이 없는데 배상을 하라고 국가가 명령한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이런 말도 안 되는 법안을 반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배상을 하는가. 이런 기본적인 상식에서도 한참 벗어난 논리에 많은 이들이 동의할 만큼 대한민국 국민들의 지적 능력이 수준 이하였던가. 아니면 수십년 간 쌓인 의사라는 특정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의 결과인가.

◇ 잘못한 게 없는데 배상하라고(?)
사실 새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던 부모의 입장에선 나쁠 것이 없는 말이다. 일반적인 환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부분의 의료사고에 있어서 환자들은 원인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경우에 무조건적으로 보상이 주어진다니 환호할 만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 현재도 전국에서 분만실을 운영하는 산부인과의 수는 극히 제한적이다.

전라도 지역 어디에선가 산모의 조기진통이 시작되었는데 가장 가까운 분만실을 찾아가는데 1시간 40분이 걸렸다는 심각한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분만 과정이 한치 앞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급박하고 위험한 상황이라 많은 의료사고가 뒤따르고 이로 인해 분만실을 운영하는 산부인과의 수가 적다는 것인데 오히려 위는 이 같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어느 의사가 고의로 의료사고를 유발하겠는가. 상황이 이러한데 “과실이 없는 병원도 배상을 하라”고.

과실이 없는 의료사고에 대해 환자가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는 필자도 찬성한다. 다만 배상을 행하는 주체가 병원이라는게 문제다.
국가가 산부인과 의사에게 무얼 해준게 있다고 책임 없는 과실을 논하는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것도 없이 현재 운영 중인 분만실조차 점차 하나둘 문을 닫을 것이고 빠르면 3년 내에는 대도시에서조차 대학병원을 제외하고는 분만을 하는 병원을 찾을 수 있을까?

◇ 분만은 이제 대학병원서 해야
지방 광역시 인근에서조차 분만을 위해 몇 시간이나 헤매는 상황이 발생하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법안을 제안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참 궁금하다. 잘못을 하지도 않았는데 배상을 해야 하는 한국의 산부인과 의사선생님들 거기다 대고 전액 배상이 아니라 반만 부담시키는 것이니 만족하라는 국가, 과연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는 것일까?

김문택
대한공보의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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