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장동력 HT산업 토대 '연구중심병원' 주목

정부, 올 상반기 연구중심병원 지정...의료기관 원천기술 확보 주력

최근 병원들의 최대 화두는 당연 연구중심병원이다.
이는 주요 병원들의 신년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병원장들은 하나같이 올해를 연구중심병원의 원년(元年)으로 다짐하고 있다.
이제 연구중심병원의 필요성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졌다.
문제는 어느 병원이 연구중심병원으로의 변화에 대한 준비가 되었느냐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내 연구중심병원을 지정할 예정이다.
이에 연구중심병원의 현재 진행 상황과 성공을 위한 조건에 대해 알아본다.

연구중심병원, 미래 新성장동력
연구중심병원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 나온 건 지난 2009년 12월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병원의 연구역량강화 방안이 보고되면서부터였다.
이후 복지부는 연구중심병원 육성 TF를 구성·운영하면서 연구중심병원의 개념을 정립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관련 법 제정과 예산 확보를 위해 움직였다.
그 결과 2011년 8월 보건의료기술진흥법에 연구중심병원을 지정할 수 있는 개정안이 공포되었고 오는 2월 5일부터 시행에 들어가게 된다.

연구중심병원은 진료영역에서 축적된 지식을 기반으로 첨단 보건의료의 연구개발과 사업화를 통해 보건의료산업발전을 선도하는 세계적 수준의 병원을 말한다.
핵심은 병원이 현재 한계에 다다른 진료 중심에서 연구역량의 강화를 통해 새로운 병원 성장의 원동력을 갖겠다는 것이다.

연구중심병원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 복지부는 지난 해 11월 연구중심병원 사업설명회를 통해 보건의료기술(Health Technology, HT) R&D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보건의료기술 개발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HT 산업은 미래 국가성장을 견인할 新성장동력이라는 것이다.

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생리학교실 박소라 교수는 “세계는 post-IT 시대의 국가성장 전략산업으로 보건의료기술을 지목하고 있다”며 “어느 때보다 R&BD(Research & Business oriented Development)를 통한 산업원천기술 확보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HT의 최종 수요처이자 공급자인 병원의 뛰어난 연구 역량이 바탕이 될 때 HT 산업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고 그 토대가 바로 연구중심병원이라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예산 확보, 넘어야 할 큰 산
연구중심병원으로 가야한다는 것에는 정부, 병원, 국민 모두 공감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연구를 하는 것에는 막대한 돈이 든다.
더구나 연구를 통해 성과가 나오기까지는 1~2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막대한 투자비와 인내심이 따라줘야 가능하다.
복지부는 연구중심병원 사업비로 정부기금 9796억원에 민간기금 1조4170억원을 더한 총 2조 4000억원 규모를 예상하고 있다.
사업기간은 2012년부터 2013년까지 12년이며 병원당 9년간 3단계로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아직 복지부가 연구중심병원과 관련해 신청한 예산은 기획재정부의 예산타당성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그렇다고 연구중심병원 사업이 그냥 이대로 묻히지는 않을 것 같다.

보건복지부 보건산업기술과 이선규 사무관은 “예산 규모가 워낙 큰 사업이기 때문에 예비타당성 심사에서 약간 지연이 되고는 있지만 정부, 국회 모두 필요한 사업이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며 “2월정도 고시안과 관련한 공청회를 열고 3월에 공고한 뒤 상반기 중에 연구중심병원 지정을 마친다는 것이 복지부의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예비타당성 심사에 필요한 데이터 수집을 위해 총 5억원을 투입, 연구중심병원 R&D 전략기획 과제를 실시하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지난 12월 총14곳의 의료기관을 선정, 연구중심병원 육성사업의 구체적인 전략수립을 위한 근거자료를 확보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번 R&D 전략기획 과제를 실시하게 되었다고 연구중심병원 지정에 유리하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이선규 사무관은 “R&D 전략기획에 선정된 병원들은 실제로 병원에서 어떤 연구가 이루어지는지 알아보기 위한 구체적인 예시를 모으는 것일 뿐 연구중심병원 지정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까다로운 연구중심병원 선정 기준, 선정되면 지원은 풍부
연구중심병원은 프로젝트의 규모가 큰 만큼 지정 기준도 까다롭다.
우선 연구 조직을 살펴보게 되는데 여기서는 △연구관리를 위한 독립적인 행정관리체계 구축 △승진 및 성과평가에 연구성과가 반영될 수 있는 인사제도 운영 등을 살펴본다.
연구 인력 부분에서는 연구전담의료인(연구참여임상의사, 연구전담의사, 연구간호사), 연구전담요원, 연구보조원과 관리직원 등을 평가하게 된다.

시설 및 장비 등 연구 인프라에는 우선 생명자원은행(Biobank) 및 임상시험센터를 갖춰야 하고 독립된 일정한 연구 공간에서 주용 연구개발활동에 사용하는 필수 기계와 기구, 장치 등이 있어야 한다.
이 밖에 연구실적, 임상시험 수준, 의료서비스 수준도 지정 기준에 포함된다.
지정 절차는 우선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사업공고를 내면 연구중심병원 전략기획단이 서류검토 및 평가를 거쳐 현지조사를 실시하게 된다.
이후 연구중심병원 심의위원회에서 최종심의 후 지정한 뒤 3년 주기로 재실사를 거쳐 재지정을 하게 된다.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되면 연구중심병원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예산 및 법적인 혜택을 받게 된다.
최종 통과되는 예산 규모와 선정 병원 수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되는 병원들은 정부로부터 많은 경제적, 제도적 지원을 받고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연구중심병원에는 크게 두 방향의 지원이 이루어진다.
먼저 제도적 지원이다. 연구중심병원이 선정되면 선정된 병원들만 연구중심병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은 연구중심병원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에 제한을 두지 않아 여기저기서 연구중심이라는 단어가 남용된다.
또한 내부 연구자에게 인건비를 지급하고 간접비 비율을 인상해 준다. 세제 혜택과 연구인력에 대한 병역특례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다른 하나의 지원책은 바로 적극적으로 연구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R&D 즉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이다.

연구중심병원 지정 대상인 병원은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전문병원, 치과병원, 한방병원 등으로 거의 모든 병원이 해당된다.
즉 연구 의지와 역량을 갖추었다면 어디든 선정될 수 있다는 의미다.

지정 요건으로는 연구조직, 연구인력, 연구시설·장비 등 연구기반 인프라가 기준에 충족할 만한 수준이어야 한다. 또 최근 3년간의 연구 실적도 기준에 충족해야 한다.
이와 함께 거버넌스, 인사제도, 연구비관리체계, 교육과정, 연구관리전담조직 등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다.

병원들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나온 뒤 ACTION
그럼 정작 병원들은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대부분의 병원들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지 못하다.
예산 통과도 아직이고 선정 가이드라인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연구중심병원의 성공 여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아직 예산 통과나 편성이 되지 않아 조심스럽지만 이러다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예측도 있다”며 “되더라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다면 병원들은 결국 진료 중심으로 회귀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병원들은 연구중심병원에 대한 기대로 하나씩 벽돌을 쌓고 있다.

주요 대형병원들은 연구부원장을 신설하는 등 연구 책임자를 임명해 놓은 상태이고 생명과학연구를 위한 건물을 신축한 곳도 있다.
가장 많은 병상 수를 확보하고 있는 서울아산병원은 지난 2010년 국회에서 열린 연구중심병원 육성방안 공청회를 통해 추진 현황을 발표했다.

서울아산병원은 △구성원들의 연구중심병원에 대한 개념, 비전에 대한 컨센서스 확립 △병원장 직속 부원장급의 연구전담조직(연구위원회, 연구기획관리실) 개편으로 임상·연구의 균형적 경영시스템 확립 △경쟁력 있는 분야 선정 및 투자 계획 수립 △연구 활성화를 위한 인사제도 및 인센티브 시스템 개선 등을 실행 중이라고 밝혔다.
당시 공청회에 참석해 발표한 이정신 前 서울아산병원장은 “정부의 법적 근거 마련, 규제 정비, 인센티브 제공, R&D 인프라 지원 등이 된다면 병원들도 적극적으로 한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짜지는 않았다.
하지만 연구 역량 강화를 위해 연구부원장을 신설하고 홍성화 이비인후과 교수를 임명했다. 정부의 계획 안이 나오는 데로 본격적인 연구중심병원으로의 전환을 준비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당장의 희생 감수하고 먼 미래보는 안목 필요
일부에서는 이런 요건을 갖춘 곳은 몇몇 대형병원들만 해당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연구중심병원의 선정에는 덩치(Size)가 아닌 마음(Mind)이 중요하다는 것이 복지부의 설명이다.

보건산업진흥원 연구중심병원 TF팀 관계자는 “연구중심병원 지정은 의사 수, 병상 수, 장비 보유 현황처럼 절대적인 기준치가 아닌 상대적인 기준에 의해 정하기 때문에 병원 크기와는 상관없다”며 “중요한건 병원이 연구에 대한 열정과 의지가 있느냐지 남들 다 하니까 한다는 자세라면 선정되기도 힘들고 되더라도 성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산업 전문가도 연구중심병원이라는 대전환에 있어 우선 병원들의 마음가짐을 당부하고 있다.

박소라 교수는 “그동안은 연구라고 해도 교수 개인차원에서 하는 작은 연구 정도였다”라며 “오히려 연구를 열심히 하는 교수는 연구 진행에 있어 주위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 반기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병원들도 계속 진료에만 매달려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이에 연구역량을 강화, 기술력을 높이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연구에 집중하다가 생기는 진료 공백으로 인한 진료 수입 감소 등을 우려하는 병원이나 교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좀 더 멀리 볼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박 교수는 “병원들은 먼저 희생에 바탕을 둔다는 정신이 필요하다”며 “연구중심병원이 병원의 모든 걸 바꾸라는 것이 아니고 연구를 하려는 몇몇 과와 의사 중심으로 연구역량을 강화하는 개념으로 이해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 'HT산업 활성화' 잰걸음

매년 수 백억 투입...병원 중심 클러스터 집중 육성

미국, 영국, 일본 등 세계 선진국들은 HT산업에 있어서도 선두에 있다.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나라가 HT산업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다.
각 나라들은 HT산업 활성화를 위해 연구중심병원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이에 대표적인 몇 나라의 예를 살펴본다.

◇미국= 집중적이고 대규모로 지원을 통해 최고수준의 병원 중심 HT를 구현하고 있다.
산·학·연 R&D 클러스터를 육성, 산업화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하버드 MGH의 경우 보스턴 지역 바이오클러스터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세계 최대 연구중심병원으로 R&D에 연간 5.5억불을 지출하고 있다. 병원을 중심으로 다국적 제약사 등 1000여개 바이오 기업이 모여 있다.
텍사스휴스턴 메디컬센터(TMC)는 휴스턴 지역 경제의 25%를 차지한다.
TMC내에 있는 MD앤더슨 암센터는 세계 최고 규모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연구개발과 인력양성에 중점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영국= HT 산업 선두권 확보를 위해 최근 병원 중심의 R&BD 활성화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AHSC(Academic Health Science Center) 프로그램 신설을 통해 병원중심의 클러스터를 집중 육성하고 있다.
2010년까지 5개의 AHSC를 지정하고 의료서비스와 중개연구 향상을 통해 10년내 글로벌 top5를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임페리얼 대학은 AHSC로 최초로 선정된 뒤 NHS trust로부터 1700억원을 지원받았다.

◇일본= 기존에 확보된 HT 원천기술의 임상적용을 위한 병원중심 융합 중개연구팀에 대형연구과제를 안정적으로 장기 지원하고 있다.
줄기세포 분야의 원천기술을 임상적용하기 위해 병원중심의 융합 중개연구팀 TWins에 6년간 매년 600억원씩 지원 중이다.

◇싱가포르, 인도= 아시아 국가들은 연간 40조원 규모의 글로벌 임상시험 시장점유율 확대에 전략적으로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세계적 수준의 임상과학프로그램을 개발·운영 중에 있다.
인도는 저비용 임상시험, 대상자 선정 편의성 등을 기반으로 세계 임상시험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제언 : 박소라 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연구중심병원 지속 관리, 지원 성공 지름길

범부처적 HT산업 기반사업 개념 공유, 경쟁력 갖춘 제품 만들어야

연구중심병원은 병원이 가지고 있는 임상의사를 포함한 전문인력, 축적된 임상경험, 임상에서 도출되는 많은 시료, 정보, 아이디어들, 기자재 및 연구공간 등을 기초연구자와 산업체에 개방하므로 바이오 분야의 연구결과들이 효율적으로 산업화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병원은 연구 역량 강화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병원으로 성장이 가능하며 이는 국가의 중요한 성장 동력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연구중심병원이 미래 의료와 보건의료산업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여 이에 합당한 수준의 지원을 하여야 할 것이다.

첫째, 연구중심병원사업은 HT산업의 기반사업이라는 개념의 공유가 범부처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연구중심병원이라는 고속도로를 통해 교과부의 기초연구 결과는 산업화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며 지경부의 산업화 연구는 경쟁력있는 제품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연구중심병원 지원은 장기적 계획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100년 이상의 NIH 역사와 함께 지원된 보건의료 R&D가 세계 HT 산업 최강국인 미국을 가능하게 하였다는 사실은 보건의료 R&D 지원의 역사가 10년 밖에 되지 않는 우리나라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연구중심병원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가는 지원과 동시에 사업관리에 대한 지속적이고 확고한 전략을 함께 제시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존 R&D와는 차별성이 큰 연구중심병원의 기본 개념이 변질되지 않도록 정부-민간 합동의 연구중심병원 관리기구 또는 관리시스템이 구축되어 사업이 지속될 때 까지 유지되어야 한다.

박소라 교수
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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