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민족’ 정체성 뒤집는 역사추적

허황옥 루트

인도에서 가야까지
김병모 저

언제부턴가 국제학회 활동이나 외국여행을 하면서 유독 아시아, 그 중에서도 한국과 일본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음을 느꼈다.

언어의 문제를 떠나 문화적 이방인이 되는 듯한 느낌에 갇힌 적이 많았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우리는 우리끼리만 부대끼며 우리만의 문화를 가꿔온 단일 민족이라 불리는 것일까?

이런 나의 끝없는 질문에 희망을 준 일련의 책이 김병모 교수의 <허왕옥 루트 인도에서 가야까지>다.

저자는 이 책에서 김수로 왕비 보주태후 허씨(허황옥)의 이야기를 하나 둘 엮어 우리의 역사와 오늘날 중동으로 불리는 곳의 역사를 연결하여 우리 민족이 여러 민족과 다양하게 섞이면서 형성되었음을 밝혀낸다.

김해의 김수로왕릉에 그려진 물고기 한 쌍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런 의문에서 시작된 저자의 퍼즐 맞추기는 허황옥의 고향과 쌍어의 흔적을 찾기 위해 인도와 중국을 비롯해 네팔, 파키스탄, 영국, 독일, 미국, 이란 등을 답사하면서 40여 년간 이어진다.

쌍어 신앙을 믿는 사람들은 지중해에서 한반도까지 넓은 지역에 살았으며, 기원전 7세기 전부터 서기 1세기경까지 육로를 통해 접촉했다.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스키타이, 간다라, 마가다, 운남, 사천, 가락국, 야마다이고쿠 등지에 걸치는 광범한 내륙지방을 오가던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쌍어는 만물을 보호하는 수호신이었다.

이 쌍어 신앙을 고리로 저자가 맞춰낸 퍼즐의 결과 김수로왕비 보주태후 허황옥의 조상은 아유타국에서 출발하여 지금의 중국 사천성의 보주에 정착했다가 정치적인 사건에 연루되어 중국남부를 거쳐 한반도에 이르게 된다.

그녀의 한반도 도착은 드라비다어로 물고기라는 뜻을 가진 가야(가락)이라는 지명을 낳았고, 김수로왕의 결혼은 유목민의 문화와 남아시아 풍속의 결합이라는 풍성한 문화적 충격을 한반도에 안겨주게 된다. 메소포타미아에 뿌리를 둔 인종과 문화가 한반도에 이식 되었다는 것도 또 다른 의미의 성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허황옥의 한반도 도착과 같은 일들은 우리 역사에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사건이다.

우리 역사에 홀연 등장하는 처용에 대해서도 비슷한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들이 적잖다.

백제 멸망 후 중국 및 일본으로 이주한 여러 무리의 한반도인들이 있는가 하면, 역으로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피해 한반도로 이주한 많은 중국인에 의해 동아시아의 혈통과 문화는 다양하게 섞였을 것이다.

아유타국 출신 허씨와
김수로왕의 혼인은
유목민과의 결합이란
문화충격 안겨줘

양대열
한림대강동성심병원

비뇨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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