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소통(communication)이다. 의료 분야에서도 소통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의사와 환자사이에 소통이 잘 안되어 일어나는 문제가 의료현장 전반에 걸쳐 발생하고 있다. 특히 의료분쟁이나 불친절한 서비스로 인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상황을 들여다보면 소통의 부재로 인한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환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의료윤리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상황에 맞는 의학지식을 환자나 환자가족들에게 적절한 언어를 통해 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informed consent)는 환자의 자율성 보장을 위해 가장 강조되는 부분이다. 실제로 의료분쟁 발생 시 법정에서는 사전에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가 있었는지의 문제가 판결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환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했는지에 따라 의사 과실 비중이 크게 좌우 되고 있는 추세이다. 모든 의술은 완전하지 않고 의사도 신이 아니기에 원하지 않은 나쁜 결과(합병증, 휴유증, 의료과오, 의료과실)를 피할 수 없는 것이 의료현장이다. 바쁘고 긴박한 의료현장에서 의사들은 발전하는 의학기술과 많은 양의 정보를 짧은 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전달해야만 한다. 쉽고 간결한 설명으로 환자들이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통의 기술이 필요하다.

최근 의료소송이 의사와 환자에게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미국에서는 sorry work이라는 소통의 기술이 의료분쟁을 줄이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Sorry work이란 의료사고가 발생되었을 때 피하거나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나 가족들에게 일어난 나쁜 결과에 대해 의사 자신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마음 아프다는 위로와 공감을 먼저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sorry work을 한 후 진실말하기를 했을 때 피해가족의 분노가 가라앉게 되고 감정이 안정되어진다.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분쟁을 줄이고 손해배상액도 줄게 된다. ‘유감으로 생각 한다’ ‘마음 아프게 생각 한다’ 는 사실을 성의껏 표현하는 소통의 기술이 모든 상황을 낫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이다.

치료도중 환자가 사망했을 때 원만한 해결을 보기 힘들거나 사인을 밝히기 어려울 때 택하는 것이 부검(autopsy)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모과장은 의료분쟁이 발생했을 때 의뢰되는 부검케이스 중 상당수는 의사들의 소통의 기술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의혹과 분노에 찬 피해 환자 가족들에게 때에 맞는 적절하고 예의 바른 설명이 있었더라면, 부검까지 하지 않아도 될 경우가 너무나 많다고 한다.

의사들이 환자를 위해 최선의 치료를 했다고 하더라도 환자나 가족들에게 의사가 수고한 내용을 알려 주지 않는 한 환자나 환자 가족들은 의사의 노력을 알 수가 없다.
의사들이 아무리 윤리 공부를 많이 하고 윤리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더라도 그 노력이 겉으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의료현장에서 의료윤리가 단지 정보에 머물지 않고 살아서 제 역할을 하려면 소통이라는 통로를 잘 이용해야만 한다. 소통은 의료윤리가 살아 숨 쉬도록 생명력을 불어 넣어 준다. 이러한 소통의 기술을 배울 기회가 의사들에게나 의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의대생들에게나 모두 필요하다.

의료윤리교육과 함께 소통에 대한 교육이 의과대학 교육 과정과 의사들의 평생 보수교육 과정 속에 이루어졌으면 한다. 지금 의사들에겐 survival tool로서 소통의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이다. 소통의 기술을 잘 이용할 줄 아는 의사가 윤리적인 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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