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모든 의사들이 피해가고 싶고 경험하기 싫은 일이 바로 의료분쟁이다. 주변 동료의사들이 의료분쟁 때문에 고통당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치 나에게 곧 닥칠 일인 양 가슴이 덜컹한다. 의료분쟁은 나쁜 결과를 입은 환자나 환자 가족, 의사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있다. 게다가 의료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소모되는 물질적, 정신적, 시간적 손실은 사회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피해를 줄여 보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의료분쟁조정법이다. 하지만 이번에 만들어진 의료분쟁조정법을 살펴볼 때 의료분쟁을 적절히 풀어갈 제도로 자리 잡게 될지 의문이다. 게다가 무과실보상을 정부와 의사가 반반씩 부담하도록 하는 시행령 등을 볼 때 이런 의문이 더해 간다. 비합리적인 부분들은 과감하게 삭제되어야 한다.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료분쟁조정원에 가거나 변호사를 대동하고 법원까지 가지 않고도 의료분쟁을 원만히 해결될 수만 있다면 의사나 피해가족이나 모두에게 좋은 결과일 것이다.

이러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의료분쟁의 해결책으로 sorry work을 통한 진실말하기(true telling)가 새로운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Sorry work(사건이 발생되었을 때 피해가족이나 환자에게 위로와 안타까움을 전하는 일)을 표현한 후 진실말하기를 했을 때 불필요한 분쟁을 줄이고 손해배상액도 줄일 수 있다는 흥미로운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있는 대로 다 오픈하게 된다면 많은 배상금을 물게 되고 불리한 재판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기존의 상식을 뒤집어 버린다.

의료현장에서 원하지 않는 여러 가지 나쁜 결과(약물 부작용, 수술 후 장애, 합병증, 사망)에 대해 환자나 환자 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지 진실을 알기 원한다는 사실이다. 의사의 태만에 의해 발생된 의료과실(malpractice)인지 아니면 단순히 병의 진행과정의 결과로 인한 결과(complication)인지, 혹 잘못 된 약물선택인지 ,수술과정 중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등을 알고 싶어 한다. 미국 밴더빌드 의대의 힉슨 교수는 그의 연구를 통해 대부분의 환자나 가족들이 의료오류(medical error)와 관련하여 소송을 선택한 이유는 환자나 환자가족의 탐욕이 아닌 분노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사실을 인식한다면 소송 가능성을 줄일 수 있고 설사 소송을 당한다 하더라도 승소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증명하고 있다.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하거나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나 가족들에게 일어난 나쁜 결과에 대해 의사자신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마음 아프다는 위로와 공감의 표현을 먼저 해야 한다. 일명 sorry work 이라고 한다. “안타깝다”고 말하는 것은 책임을 인정하거나 시인하는 것이 아니다. 진실말하기 절차의 첫 번째 단계는 사과가 아니라 단순한 위로와 공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감으로 생각 한다’ ‘마음 아프게 생각 한다’ 는 사실을 성의껏 표현하는 것은 모든 상황을 낫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이다.

sorry work을 통한 진실말하기는 의료오류(과실)에 관계된 환자나 환자가족의 분노를 줄이는데 중요한 솔루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의술은 완전하지 않다. 부인과 방어로 이어지는 위기관리 방식은 선량한 사람을 냉혹한 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더 나아가 부인과 방어, 변명은 피해자의 분노와 소송을 불러일으킨다. sorry work과 진실말하기를 통해 분노를 유발하는 요인을 제거했을 때 손해배상액수가 감소하고 소송 역시 감소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정말 그럴까하고 섣불리 믿기 힘든 일이지만 지금 의료소송의 천국인 미국에서는 sorry work을 통한 의료분쟁 해결에 새로운 희망을 걸고 있다. 환자들은 진실을 말하고 마음으로 환자들을 배려하는 의사에게 마음을 열어 놓는다.

환자를 배려하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 의료윤리의 기본이다. 의료윤리는 의사나 환자들의 어려운 관계를 풀어주는 통로가 되고 있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