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암센터 응급실에서 근무한 지 어느덧 9년차다. 특수병원으로 암을 진단 받은 환자만이 치료 또는 그에 따른 부작용 등을 경험하며 내원한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힘든 일을 하는 구나” “스트레스가 상당하겠다” “거기가 제일 힘들다던데”라며 걱정스런 말들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일은 하면 익숙해지고 아픈 사람들만 보다보니 기운 없고 어두운 표정이 당연하게 와닿기도 한다.

그렇지만 늘 익숙해지기 힘들고 가슴 아픈 순간 들이 있다. 그중 소아암 환자를 대할 때는 더욱 그렇다.

민지는 이제 만 4세가 된 여자 아이다. 출생 당시 다운증후군을 진단 받았고 다행히 다른 동반 기형은 발견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열이 계속 나서 찾은 병원에서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을 진단 받게 된다. 다운 증후군 아이는 급성 백혈병 발병률이 증가한다. 그리고 지금 항암요법을 지속하며 병마와 싸우고 있다.

항암치료 중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고 면역력이 저하되면 쉽게 감염이 생기게 되고 입원하여 항생제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이때 아이들은 대부분 열이 나서 응급실을 찾게 된다.

고열로 인해 잘 먹지도 자지도 못한 아이들은 보채거나 지친 표정으로 응급실에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아이는 좀 다르다. 아니 특별하다.

다운증후군 아이들은 둥근 얼굴과 통통한 볼, 납작한 뒤통수, 덧살이 많은 목과 등, 눈꼬리가 외상방으로 경사져 있는 신체적 특성을 보인다. 누가 봐도 다운증후군에 백혈병을 앓고 있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상황인데 엄마, 아빠, 환아까지 웃으며 “또 왔어요”라며 손 인사를 하며 들어온다.

아이들은 정말 하루가 다르다더니 볼 때마다 커 있다. 그 아이 특유의 환한 미소는 보는 사람마저도 즐겁게 한다. 간혹 피검사를 한다거나 주사를 놓으려고 하면 울기도 한다. 이맘 때의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그렇다. 옆에서 지켜보던 환자들이 함께 울기도 하고 보호자가 엄마의 손을 잡고 위로를 전하기도 한다. 나 또한 그랬다.

‘다운증후군 이라는 것도 속상한데 백혈병 이라니….’ 하지만 엄마는 항상 씩씩하게 말한다. 뱃속에 있을 때 다운증후군이라는 것을 알고 낳았고 그리고 한참 재롱 피울 나이에 백혈병을 진단받고 병원을 수도 없이 드나들지만 아이가 부족한 부모에게 와준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라고. 그리고 아이가 주는 즐거움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고 말이다.

그 마음을 조금은 알겠다. 환자를 보는 순간, 걱정스런 마음보단 아이의 환한 미소 덕에 새로운 힘을 얻곤 하니 말이다.

소아암은 발견이 빨리되고 치료만 잘 받는다면 성인암보다 치료율이 높다. 부모가 치료방침을 잘 이해하고 더 적극적으로 치료 과정에 임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힘든 시기를 잘 보내고 더 밝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희망한다.

사람들은 국립암센터의 응급실이 매우 어두울 것 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 곳에 사람들도 모두 회색일거라 생각할지도. 하지만 이곳에는 흐린 날이 지나고 햇살이 따뜻하게 비춰주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간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 하루의 소중함을 알고 곁을 지켜주는 모든 이에게 감사하며 말이다. 바쁘고 힘들 때도 있지만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삶에서 가장 힘들지만 소중한 때에 함께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재숙

국립암센터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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