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학회 참가로 그리스에 간 일이 있었다. 10년도 넘었으니까 오래 전 일이다.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거나 신문을 읽고 있었다.
허둥지둥 학회장으로 가고 있던 나까지 마음이 여유롭고 편안해 지는 느낌이었다.

저녁이 되면 식당은 와인과 함께 저녁식사를 즐기는 사람들로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고, 사람들은 유쾌하고 행복해 보였다. 길거리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만원 전철에서 시달리고 직장에서 일하다가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가는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학회장에서 만난 그리스 의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당신 나라와 국민은 정말 복 받은 나라이고 국민이라고….”

그는 ‘그리스가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은 것’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인즉 그리스는 가만히 있어도 외국에서 관광객이 물밀듯이 온다는 것이다.

다 무너진 돌무더기와 팔다리가 없는 돌덩어리뿐인데 왜 그것들을 보러 오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하긴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리스 유적 중에 성한 돌덩어리는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했다. 파르테논신전도 벌써 수 십년째 돌무더기를 골라서 조립 중이고 대부분의 조각상들도 성한 조각상이 드물었다.

그리스의 최대산업은 관광산업이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식당이나 호텔, 관광버스, 관광가이드, 관광업체 등에 종사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일들 대부분이 남에게 서비스하는 일이고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좋게 말해 서비스산업이지 나쁘게 말하면 심부름산업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관광객이 시키는 일을 하다 보니 국민들이 자발적이고 창조적이지 못하다고 했다. 충격적이었다.

관광산업은 모든 나라가 부러워하는 3차 산업으로 부가가치가 높고, 외화가득률이 높은 굴뚝 없는 황금산업이라고 알고 있었던 나에게는 뜻밖의 대답이었다.

최근 그리스사태가 세계적인 이슈가 되면서 그리스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직장에 나가지 않고 카페에서 담소를 나눌 수 있던 것이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일컬어지는 과도한 복지혜택 때문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스사태를 보면서 축복과 저주가 그리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가 축복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도 언젠가는 저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처럼 말이다.

김형규
고대안암병원 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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