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상태 감안해 수가인상률 결정해야 하나?

보험 재정 염두한 수가억제 ‘의료 양극화’ 유발
최소한 ‘의료원가 상승률’보다 높은 책정 필요
공단이사장이 주도적으로 수가 협상 이끌어야

대한병원협회와 국민건강보험공단 간에 내년도 건강보험수가 협상이 결렬됐다.

공단이 최종적으로 1.9% 인상안을 제시했으나 병협에서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공단은 내년도 보험재정여건을 감안할 때 보험수가를 그 이상 인상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전체진료비 중 병원진료비 비중이 50%를 넘기 때문에 병원 수가를 큰 폭으로 인상할 경우 보험재정에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반면에 병협에서는 병원 경영상태와 물가 및 임금인상률 등을 감안할 때 12%의 수가인상이 필요하나 협상을 타결 지을 생각에 3.5%까지 물러선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제 병원 수가인상률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로 넘겨졌으며, 아마도 건정심에서는 공단과의 수가협상 결렬에 대한 책임을 물어 병원 측에 페널티를 부과하려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병원의 수가인상률은 1.9%보다 낮은 수준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현재의 수가협상 과정을 볼 때 공단 재정위원회가 보험재정을 고려하여 사전에 수가인상률을 정하고 공단 이사장으로 하여금 이 범위 내에서 의료단체와 수가협상을 하도록 한 것은 매우 잘못된 방식이다.

공단이사장은 재정위원회가 결정한 수가인상률을 통보하는 하수인에 불과할 뿐 협상 당사자로서의 권한이 없는 것이다.

건강보험수가는 의료기관이 적정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수준으로 책정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수가인상률이 최소한 의료원가 상승률보다는 높게 책정되어야 한다. 즉, 수가인상률이 적어도 임금 및 물가상승률의 가중평균치보다는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다수 선진국의 수가인상률이 물가상승률을 다소 상회하는 수준으로 책정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나라의 수가인상률 결정방식을 보면 공단 재정위원회가 의료기관의 경영상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보험료 수입과 진료비 지출 추이만을 근거로 수가인상률을 산정해 왔으며(당연히 공단 재정위원회는 보험재정 안정이 최우선 과제임), 그 결과 그간 수가인상률은 임금 및 물가상승률 가중평균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으로 결정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 하에서 의료기관이 살아남으려면 지출을 줄이거나 진료수입을 늘릴 수밖에 없는 바, 결국 중소병원은 직원수를 줄이고(병상당 직원수를 1.5명에서 0.7~0.8명으로 감축하였음), 대학병원들은 환자수를 늘리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병상당 일평균 외래환자수를 1.8~2명에서 3~4명으로 늘렸음)

보험재정 안정만을 염두에 둔 무리한 수가억제는 결과적으로 진료비를 줄이지도 못하면서 의료의 질만을 저하시키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수가를 억제하면 진료비가 억제되고 국민의 의료비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 반대의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제 수가인상률 결정방식의 틀을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는 “보험재정 상황으로 보아 내년도 보험수가 인상률은 A%를 초과할 수 없다”는 식이었지만, 이제는 “의료기관의 임금 및 물가인상률 등을 고려할 때 내년도 보험수가 인상률은 A%가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사고방식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

즉, 보험재정 균형을 먼저 달성하고 나서 남은 재원을 수가인상에 돌리던 것을 앞으로는 적정수가인상률을 먼저 결정한 다음 재원 마련방안을 강구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보험재정은 절대 적자를 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건강보험료 인상이 곤란한 상황이라면 일시적으로 보험재정 적자를 금융기관 차입금으로 충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적정진료가 가능하도록 수가를 현실화 해줘야 한다. 수가를 올려주지 않아 의료기관이 지속적으로 적자운영을 해야 한다면 결국은 직원수를 줄이거나 환자수 및 진료량을 늘리거나 또는 폐업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직원수를 줄이는 것은 적정진료에 지장을 주고 환자수 및 진료량을 늘리는 것은 의료비 증가를 초래하며 병원폐업도 결국은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따라서 보험수가를 지나치게 억제하기보다는 수가를 적정수준으로 인상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훨씬 이익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지난 10여년간 무리하게 수가를 억제한 결과 오히려 의료비는 더 큰 폭으로 증가하고 중소병원과 대형병원 간에 의료의 양극화만 심화되지 않았던가.

수가인상률 결정방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수가협상에 관한 공단이사장과 재정위원회의 역할과 기능도 바뀌어야 한다.

공단이사장은 재정위원회의 하수인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의료단체와의 수가협상에 임할 수 있도록 해야하며, 의료기관의 경영실태 자료를 중심으로 임금 및 물가 등 각종 경제지표를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수가인상률을 제안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공단재정위원회는 이사장의 자문역할을 하면서 이사장과 의료단체장들의 협상에 의해 수가인상률안이 도출되면 이에 대한 재원조달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재정위원회가 사전에 수가인상률 범위를 정하고 수가협상에 나서는 공단이사장에게 이를 따르도록 강제하는 것은 이사장의 수가협상 기능을 무력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수가는 앞으로 수년 동안은 물가상승률보다 높은 수준으로 인상되어야 한다. 중소병원 인력이 적정수준의 절반에 불과한 것이나 대학병원 외래환자수가 적정수준의 두 배에 달하게 된 것은 모두 경영난을 탈피하기 위한 병원의 안타까운 자구노력의 결과이다.

이제 이와 같은 잘못된 현상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기 위해서는 당분간 정부와 병원계 간에 진지한 협력과 노력이 요구된다. 정부는 수가현실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병원계에서는 법정인력 확보와 환자 진료시간 확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제 병원수가 결정은 건정심에서 이뤄질 것이다.

무턱대고 수가를 억제하는 것이 오히려 국민 부담만 가중시키고 의료의 질을 저하시키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를 기대해 본다.

성익제

전 대한병원협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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