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약에 대한 안정성과 부작용 등을 알아보는 시험을 임상시험(Clinical test)라고 한다. 이중 동물에게 하는 시험을 전임상시험이라고 하고 사람을 대상으로 한 약효평가를 임상시험이라 한다. 1상에서는 소수의 건강한 환자를 대상으로 안전성을 평가하고, 2상에서는 수백명의 환자에서 적용질환과 최적의 투여량을 설정한다.

3상에서는 수천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유효성과 안전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약물 시판 후 부작용을 추적, 검토하는 것을 4상이라 한다. 풍부한 임상경험과 약물에 대한 다양한 임상 반응 정보를 알기 위해 제약 산업과 의료인간의 꼭 필요한 소통기전이다. 상호 긴밀한 의견교환을 통해 새로운 치료 약물과 치료법을 개발하여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의료발전에 매우 중요한 기전이다. 하지만 의료인과 제약 산업과의 건전한 관계가 왜곡되고 변질되어 가고 있다. 제약사간의 과도한 경쟁과 열악한 진료수가에 지친 의료인들을 유혹하는 금전제공 때문이다.

비윤리적 이해상충(COI, Conflict of interest)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다른 나라에서도 같은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이해상충의 문제를 건전하게 해결하려면 정당한 이익추구와 환자의 이익에 앞선 비윤리적인 이익추구를 구별해 줄 원칙이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각 나라에서는 이미 이러한 이해상충문제에 대한 원칙이나 가이드라인을 의사협회나 의료윤리단체에서 제정하거나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적절한 원칙이나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에서 쌍벌제 같은 기분 상하는 법까지 탄생하고 말았다.

의료인들이 자발적으로 개발하고 정리하지 못한 윤리적 지체(ethical lag)현상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판단된다. 쌍벌제 이후 필요 이상으로 피해의식에 쌓여 제약회사와의 관계를 피하기도 한다.

임상시험은 아예 기피하거나 참여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처럼 원칙이나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은 혼란을 조성하고 건전한 소통기전을 와해시키거나 정체시켜 버린다. 2011년 8월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해줄 3대 기본원칙을 한국의료윤리학회와 근거창출임상연구국가사업단이 주관하여 제시하였다.

환자이익 우선의 원칙, 이해상충 관리의 원칙, 의사-제약 산업체 관계 설정의 원칙이다. 세부지침으로 통산적인 식사수준 이상의 음식이나 주류대접, 기타 대가성으로 제공하는 금품이나 기계, 기구 등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다.

제약회사로부터 샘플용 의약품을 받아도 되나 필요한 환자에게 공평하게 사용해야하며, 자신이나 가족 , 친지에게 사용되는 것은 허용된다. 임상진료지침 개발과정에 참여하는 의사나 관련 전문학회 등은 제약 산업체로부터 재정 지원 등의 이해상충 문제로 자유로워야한다.

제품설명회에는 의사본인 외에 가족이나 친지를 초대해서는 안 되고 의약관련교육목적이 아닌 친목을 위한 의사들의 모임을 구성하여 식사 등의 대접을 받지 말도록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자승자박하는 지침이 될 것이라는 볼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전문가의 위상과 격을 위협하는 비윤리적인 상황이 발생할 때 적극적으로 대응해야만 한다.

자발적으로 먼저 원칙을 정하고 지켜나가도록 행동해야한다. 자율성(autonomy, self-regulation)은 전문가 생명과 같은 것이다. 의사들이 자율적으로 스스로 윤리지침을 개발하고 지켜나가려고 하지 않는 다면 타율에 의한 제2~3의 쌍벌제가 탄생할지 모른다. 제안된 의사-제약 산업체 관계 윤리지침 3대 기본원칙을 지키려면 현 약사법과 상충하는 부분을 해결해야만 한다.

각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세부지침도 개발돼야 할 것이다. 해결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는 제안이고 단계적 접근이지만 용기있게 원칙을 제시해준 관련단체의 숨은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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