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발령전화가 걸려오던 그 때를 기억한다. 새롭게 적응해야 할 환경에 대한 걱정 보다는 새롭게 만나게 될 사람들과 나의 일에 대한 기대로 잔뜩 설렜다. 하지만 막상 내가 간호사로서 일하게 된 병원이란 곳은 생각처럼 그렇게 만만한 곳은 아니었다. 매일 밀려드는 업무와, 내 능력보다 많은 것들을 나에게 바라는 환자들을 상대로 마냥 웃으며 일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일상이 점점 단조로워져 갔고, 일이 끝나면 들어와서 자기 바빠지는 내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그게 그때는 최선이었고,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그러던 중에 6개월이 훌쩍 흘러 연말이 다가왔다. 병동에서 가장 막내인 우리와 09 grade 선생님들이 뭉쳐 자연스럽게 송년회 준비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너무 막막했다. 일을 배우기에도 한참 정신없던 시기였기에 그 와중에 송년회 준비라니, 마음이 무거웠다. 다들 비슷한 심정이었겠지만 부딪혀보자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준비를 시작했다. 함께 시간을 맞춰 춤을 배우고, 근무가 끝나고 남아 간호사 교육장 열쇠를 빌려 춤연습을 하고, 걱정되는 날들은 가고 시간은 빨리도 흘러갔다.

우리의 그런 부담감을 잘 알고 계시는지 윗년차 선생님들의 지원도 아낌없이 이어졌다. 함께 남아서 춤을 봐주시는가 하면, 송년회 때 쓸 영상이나 화장, 머리를 하는 일에 도움을 주시기도 하고, 끼니를 거르기도 하며 연습하는 우리를 위해 먹을거리를 사들고 오시기도 하는 등 연습기간 내내 우리에게 파이팅을 주셨다. 아마 우리끼리의 송년회 준비였다고 생각하면 해내지 못했을 것 같다.

시간은 흘러 우리의 첫 무대인 정형외과 송년회가 다가왔다.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정말 떨려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도 다들 마음을 다잡고 무대로 뛰어나갔다. 많이 부족했지만 우리를 보고 환호해주는 사람들을 보며 최선을 다해 춤을 췄다. 첫 무대가 끝난 후 우리는 많은 자신감을 얻었다. 무대는 점점 커졌고, 직원 송년회, 환자 송년의 밤까지 우리는 연습했던 바를 맘껏 펼쳤다. 환자 송년의 밤 무대에서 춤이 시작되기 전 잔뜩 긴장해 있던 우리를 향해 ‘15층 파이팅~!’을 외쳐주던 환자가 기억난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다들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우리를 응원해주고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그렇게 송년회 준비를 하면서 많은 것들을 얻었다.

일만 하며 지쳐있던 때보다는 함께 모여서 무언가를 준비 하다보니 나름의 재미도 있었고, 보람도 있었다. 원래부터 서먹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동기들 그리고 09 선생님들과 좀더 사이가 가까워지는 계기도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업무 외적인 활동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을 잘하기 위해 나의 에너지를 그쪽으로 쏟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업무가 끝난 후 나머지 여유 시간을 나를 위해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춤을 추는 그 순간만큼은 병원에서 힘들었던 것들을 잊고 거기에만 집중하며 땀 흘릴 수 있었다. 그래서 힘들었지만 값진 시간이었다.

송년회가 끝나고 난 뒤에도 여파는 이어졌다. 일을 하던 중이었는데, 보호자로 계신 한 할아버지가 ‘송년회 때 춤췄었지? 여러 면으로 재능이 있네~’라고 이야기 하셨다. 순간 부끄러워져서 얼른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곤 일에 집중했지만, 기분이 참 좋았다. 그 뒤로도 한동안 그 말을 생각하며 힘내서 일했다. 돌이켜보니 송년회를 준비하고, 무대에 올랐던 그 때가 바쁜 일상 속에 활력소가 되었다. 무대에 오르기 전 두근거리던 그 느낌. 그리고 쏟아지던 환호성. 아마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이혜수
상계백병원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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