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일반 병동에서 인공신장실로 옮겨 근무를 시작하며 도대체 지난 2년동안 ‘나는 간호사로서 아는게 무엇이었을까’ 생각할 정도로 인공신장실에서의 근무는 전혀 새로운 생활이었다.
어느 병원에서나 만성 신부전 환자들은 제일 고집도 세고 말도 잘 안 듣는 나쁜(?)환자들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새로 온 나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거나 하는 사람이 없고 모두들 혈압만 재려고 다가가도 두려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거부하는 환자들 뿐이었다. 가끔 갑자기 따뜻하게 나를 부를 때에는 ‘물 한잔 떠다 달라’ 또는 ‘침대 머리쪽이나 발판쪽을 올려달라’, ‘TV 이어폰이나 리모콘을 찾아달라’ 라는 말을 하기위해서 였다.
어느덧 training 기간도 끝나고 당직을 시작하면서 제발 on call 이 없기만을 기도하던 주말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22세의 여자환자가 Uremic symptom을 호소하며 입원했다고 응급 투석이 필요하다는 연락에 걱정 반, 귀찮은 생각 반으로 병원에 나왔다.
가냘픈 몸으로 잔뜩 겁에 질려 어머니 손을 꼭 붙들고서는 투석을 기다리며 나를 보자마자 주말인데 나오게 해서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고 하시며 투석에 관한 것들을 물으시고는 결국 어머니와 그 딸은 눈물을 흘리며 속상해 하고 계셨다. 귀찮은 생각을 갖고 나온 나는 너무 미안했고 또 신규 간호사 티를 안내려고 아는 것 모르는 것 모두를 쏟아 열심히 설명해 드렸다. 어머니께서는 딸이 젊기 때문에 본인이 딸에게 꼭 신장이식을 해주겠다며 딸을 위로하며 투석을 조금 한 후 신장이식을 할 거라는 희망감을 안고 정말 무사히 투석을 마치시고는 응급실로 가셨다.
이렇게 이 여자 환자분과 나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이 후 이상하게도 이 환자분이 문제가 생겨 입원하실 때나 복막투석 도관을 교환하는 날에는 꼭 내가 하게 되었고 2005년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를 겸임하게 되면서 환자분의 어머니의 신장 기증을 준비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환자분의 어머니는 당뇨가 있으셨고 다른 가족도 마땅히 신장을 줄 기증자가 없어 환자분은 점점 웃음이 사라지면서 복막투석을 하며 지내고 계셨다.
고대 안암병원은 장기이식으로는 그다지 이름이 없는 그런 병원이었다. 하지만 여러 부서들의 힘을 합쳐 장기이식분야를 발전시켜 보고자 2008년부터 준비를 하여 2009년 3월 1일부터 장기기증을 하는 뇌사자 관리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바로 그 첫날 원내에 첫 뇌사자가 발생하였다.
2001년 병원에 입사한 이후 그렇게 걱정이 되고 잠도 못자고 부담이 되었던 적은 처음 이었다. ‘ 내가 잘못해서 기증자가 기증을 못하게 되거나 이식환자 분들이 못 받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 ‘ 이식 수술은 잘 될 것인가 ’ ‘기증자분들 가족분들은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 ‘이식 받으실 분은 과연 누가 될까 ’ 수많은 생각들을 안고 잠도 못자고 진행하였는데 다행히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 되었다.
그런데 이런 우연이... 국립 장기이식관리센터에서 신장이식을 받을 대기자를 불러주는데 첫 번째 환자가 바로 인공신장실 처음 당직때 만난 우리 그 여자 환자분이었다.
정말 내 동생 일인 것처럼 너무 기뻐 환자가 이식 받으러 오자마자 얼른 껴안아 버렸다. 가족들도 흥분된 마음으로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나에게 ‘고맙다’는 말만 연발하였다.
수술은 정말 너무나도 성공적이었다. 그 이후 그 환자분은 공부도 무사히 잘 마치고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 어엿한 회사원이 되었다. 요즈음은 얼마나 바쁜지 어머니가 진료도 대신 보러 오신다.
그러면서 환자분도 어머니도 모두 ‘우리는 진짜 특별한 인연 인가봐요’ 하면서 항상 자랑스럽게 고대병원 신장이식인 모임에 가시면 ‘저는 김수연 선생님과 정말 특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이에요’ 하면서 말씀하신다.
정말 미숙했던 나에게 첫 번째 인공신장실 당직과 뇌사자 신장이식 환자가 된 그 환자분이 오래도록 건강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행복한 생활이 계속되기를 항상 기도하며...
또 그 환자분이 건강한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해주신 기증자 분과 가족분들에게 감사 또 감사한다.
이 분들 뿐 아니라 이 땅에서 숭고하게 모든 것을 나누어 주고 가시는 기증자분과 가족분들에게 덕분에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로또 맞았어요” 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고계신지 알려드리고 싶고 그 분들이 또 의료진들이 얼마나 감사하며 지내는지 알려드리고 싶다.
김수연 고대안암병원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