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못미의예과

얼마전 의학전문대학원(이하 의전원)으로 들어오는 관문인 MEET 시험이 있었다. 난상토론 끝에 몇 해 후면 많은 대학들이 다시 의과대학 제도로 전환하여 의전원으로 오는 길이 더욱 좁아지기에 MEET 수험생들 사이의 긴장감은 남달랐다.

의과대학으로 회귀를 주장하는 이들의 가장 큰 이유는 의전원이 우수한 의사, 의과학자를 양성하려는 취지에 비해 시간적, 경제적으로 너무 소모적이라는 점이다.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의사가 될 기회를 준다는 4+4 의전원 제도만이 갖고 있는 나름의 장점을 2+4 의과대학 제도로 다시 전환했을 때 어떻게 안고 갈 것인가가 숙제로 남는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 온 예병일 교수님께서 의예과 교육 관련 책을 집필 중이시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을 때 언제 이 책을 만날 수 있을까 기대가 컸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뜻을 가진 ‘지못미’ 어쩌면 해부학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의학이라는 고달픈 학문에 들어서기 앞서 소양을 쌓는 시기인 의예과 과정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해 의전원 제도 도입이 탄력을 받은 듯싶다.

그러면 의과대학으로 돌아간 학교들은 의예과 교육을 내실화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예 교수님은 수년간 의예과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겪은 경험과 철학을 고스란히 이 책에 옮기셨다.

구체적으로 예과생들에게 지역사회를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할 점과 학회와 행사에 적극 참여하고 봉사활동을 하는 것부터 어떤 의사로 성장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이르기까지 그 방법과 절차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학생들과 나눈 대화와 메일 내용을 살펴보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제자들을 위해 투자해 오셨는지 익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돌아보면 의예과 시절 선배들로 들은 오리엔테이션은 그저 “예과 때는 한없이 노는게 남는거야”가 전부였고 지금 학생들도 같은 방식으로 전수를 받는다.

그래도 뭔가 허전해 영어학원을 다니고 악기를 배우며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잠깐 그러다 멈춰버린 기억의 조각일 뿐이다. 의예과 수업도 국어, 철학, 인류학, 물리학, 일반화학, 유기화학 등 고등학교의 연장선처럼 별반 흥미롭거나 새로울 것이 없었다.

최근에는 글쓰기 등 몇 과목이 추가되는 등 나름 변화가 있지만 여전히 융합의 시대에 걸맞지 않는 과목들로 하루가 채워진다. 그저 스펙 쌓기와 취업 준비에 올인하는 다른 과 학생들보다는 예과생들이 형편이 나은 것 같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을 뿐이다.

진료와 연구라는 거대한 양대산맥 때문에 의학교육은 초라한 언덕 쯤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이 언덕을 누구 하나 선뜻 오르려 하지 않는다.

아무튼 이 책의 내용을 여기에 굳이 요약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관심을 갖기 힘든 예과생들에 대한 열정어린 교육과 지도가 의학도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직접 이 책을 읽고 몸소 실천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못미 의예과’는 의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초심을, 의학도에게는 미래의 청사진을 꿈꾸게 해 준다. 누군가 예과 시절 나에게 이 책처럼 멘토가 되어줬다면 20대의 시행착오는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아직 해부학, 생리학 등 의학 전공과목 수업을 시작하지 않은 예과생, 의전원 MEET 시험을 막 마친 수험생, 수련병원을 떠나 군의관과 공중보건의로 근무 중인 후배 의사들, 그리고 무엇보다 의과대학의 의예과 교육과정을 맡고 계신 전국의 선생님께 이 책을 권한다.

안지현
중앙대학교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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