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것 같지 않던 장마가 끝나기가 무섭게 뜨거움은 온 대지를 달구고 연일 30도를 훨씬 웃도는 한여름의 뙤약볕은 나를 아침부터 움직이게 만든다.

이른 아침 출근하면 그나마 뜨거운 해를 피해 쾌적한 공간에서 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에 마음깊이 감사하며 오늘 하루도 밝은 얼굴로 환자를 마주한다.

번잡한 대도시까지 5분이면 이르는 거리의 지소라 매일 예방접종에, 진료에 북새통이 따로 없다.

사람 상대하는 일이 언제나 그렇듯이 때로는 억지를 부리고 난동을 피우는 사람들도 하루에 한둘씩은 꼭 있게 마련이다.

그래도 보건지소 진료 3년차의 마음가짐이랄까, 이제는 험한 소리 해대는 사람들을 대하여도 꾹꾹 눌러 참을 필요도 없이 그냥 무덤덤해졌다.

사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하루하루의 인내가 수도승이 고행을 하는 듯하였다.

약 처방 하나에도 깐깐하게 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진료실에서 20분이고 30분이고 나를 설득하는 사람들이나, 이와는 다르게 성질이 툭툭 불거져 나오는 분들을 대하면 그 몇 분 안 되는 순간에도 수도 없이 감정의 기복이 일어난다.

어쩌면 그 감정들은 나를 마주한 환자들에게서 나온 게 아니라, 내 마음속의 번뇌와 갈등들인 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한명, 두 명 하며 그 상황들을 넘기고 나면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고 힘이 난다.
애꿎게도 시비가 벌어지고 나면 나와 환자의 잘잘못을 떠나 그날 하루는 일진이 허탕이다.

마음이 가면 몸이 따라와 주기에 아무리 좋지 않은 상황에라도 스스로를 다독이며 참을忍 자를 몇 번이나 되뇌이면 이내 마주한 사람들 또한 안색이 풀리는 게 보인다.

그러나 저러나 시간이 흐르고 바빴던 오전 진료가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 마음은 가벼워져 있다.

오늘 하루도 벌써 시간은 5시를 넘어가고 있고, 내일 역시 오늘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느 지소에 있는 선생님은 참 지루한 매일이라 생각할 지도 모른다.

또 어느 지소에 있는 선생님은 오늘 하루도 내 마음의 깊어짐과 인생의 풍요로움이 늘어났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의사로 평생을 살 동안 3년이라는 공중보건의사로서의 삶은 몇 년 지나고 나면 잊혀져버릴 만큼의 짧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3년의 시간동안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대단한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를 일이다.

김문택
대공협 정책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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