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의료, 진정 국민 위한 대안인가?

의료서비스 원가상승 등 재정수요 급증 국가 부도위기 초래

정치적 목적 경계, 무상의료 시행전 재정상황 검토돼야

‘무상복지’가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반값등록금에 이어 무상의료까지 거론되고 있다. 특히 ‘무상의료’는 온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더 없이 좋은 소재인 만큼 정치권의 표 계산에서 제외될 수 없을 것이다. 누구든 가족 중 한 두 사람은 건강 때문에 의료기관을 들락거려야 하는 것이 현실인 만큼 무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주겠다는 제안에 솔깃한 것은 당연하다.

무상의료란 국가가 모든 환자에게 돈을 받지 않고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이나 중동 산유국들이 일부 무상의료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들은 대체로 국가가 직접 의료기관을 운영하며, 의료서비스 제공에 소요되는 비용은 전액 정부예산(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그러나 무상의료에는 워낙 많은 재원이 소요되므로 중동 산유국이나 영국처럼 부자나라에서나 괜찮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뿐 웬만한 국가(예: 북한, 아프가니스탄 등)에서는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의료서비스체계(NHS)를 택하고 있던 과거 공산권 국가들이 대부분 의료보험제도로 전환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무상의료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영국마저도 환자가 공공병원에 입원하려면 몇 개월씩 기다려야 하는 문제 때문에 긴급한 환자나 부유층들은 별도의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민간영리병원이나 공공병원의 사비병동을 이용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무상의료’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민주당에서 발표한 무상의료 계획을 보면 건강보험을 기초로 하되 모든 비급여와 간병료 및 치석제거비용 등을 급여화 하고 환자의 본인부담료를 대폭 낮춘다는 것으로, 이런 내용이라면 무상의료가 아니라 ‘건강보험제도 개선 및 보장성 확대’라고 해야 옳다. 이는 현 제도를 유지하면서 보험료를 대폭 올리고 정부 부담금을 획기적으로 조정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을 무상의료라고 한다면 이는 10년 전 의약분업 도입 시 병원 외래조제실을 없애면서 이를 ‘기관분업 형태의 의약분업’이라고 우기던 것과 같은 수법 아닌가.

무상복지에는 엄청난 재정이 소요된다. 거액의 자금이 한번만 투입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지속적으로 더 많은 자금이 투입되어야 한다.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형태의 무상의료(?) 시행을 위해서도 민주당에서는 ‘8조~9조원이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정부에서는 30~39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계하고 있다. 의료서비스의 질이 저하되지 않도록 하려면 재정지원 규모는 매년 큰 폭으로 증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유사한 예는 일본과 그리스의 복지정책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일본 민주당은 자녀수당 지급, 고교무상교육, 고속도로 무료화 등의 정책을 내걸고 2009년에 집권하였으나 불과 1년 반 만에 50조엔(680조원)의 국가부채 증가를 초래하면서 주저앉았고, 그리스도 불과 20년 전에 실시한 과도한 복지정책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국가부도 위기에 몰려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무상의료’를 주장하기에 앞서 우리나라의 재정이 무상의료를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인지에 대해서 먼저 검토해 보아야 한다.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이 OECD 국가에 비해 양호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부가 공공기관의 부채를 국가부채에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착시현상일 뿐이다. 만약 정부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대로 국제회계기준에 따라 재정통계를 작성한다면 2009년 말 현재 360조원으로 발표된 국가부채는 477조원이 되어 국민 1인당 국가부채는 1천만 원이나 되며,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33.8%에서 44.9%로 조정되어 OECD 국가 중 국가부채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페인(46.1%) 및 아일랜드(46.0%)와 비슷한 수준이 된다. 정부에서는 내년부터 국가재정통계를 국제기준에 따르기로 하였으니(노무현정부에서 결정) 더 이상 통계수치를 가지고 국민을 속이는 것도 어려워질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잡을 욕심에 무상복지정책으로 국민을 현혹한다면 국가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는 지금 노령인구의 급격한 증가로 의료비가 매년 15%씩 늘어나고 있는 형편인데 여기에 무상의료까지 시행한다면 폭발적인 재정수요를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무상의료가 시행되면 의료이용량이 크게 증가함은 물론 의료기술 발전에 따른 지속적인 비급여 항목 생성, 의료서비스의 원가 상승 등으로 재정수요가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하리라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지금 우리나라의 청년실업률은 이미 9%를 넘어섰고, 2012년 이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세계평균치에도 미달할 것으로 추계되고 있지 않은가(IMF 보고서). 지금은 무상의료로 국민을 현혹하기보다는 청년실업 해소방안 마련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이다.

무상의료는 한번 시행하면 중단하거나 축소하기가 어렵다. 무상복지정책으로 파탄지경에 이른 국가경제를 복지 축소를 통하여 바로잡은 국가는 네덜란드가 유일하다고 할 정도로 한번 복지의 수렁에 빠진 나라는 좀처럼 헤어나지 못한다. 네덜란드도 국민의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정권을 내놓으면서까지 잘못된 복지제도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기에 간신히 복지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국민이 원한다 해도 올바른 국가지도자라면 ‘무상의료’에 대해서 국민을 설득하고 절제해야 하는 이유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무상의료는 결국 국민들에게 오랜 기간 동안 엄청난 고통과 대가를 치르게 한 후에야 제자리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미래의 국민들에게 ‘제2의 의약분업’을 안겨줄 셈인가?

성익제
전 대한병원협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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