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우리 모두는 죽음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고 있다.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은 주제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라는 책에서는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하는 스승의 모습을 통해 죽음을 깊이 생각해 보게 한다. 유명한 영성학자 H.나우엔 역시 죽음을 나비가 번데기에서 화려한 나비로 변하는 과정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죽음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한 미국의 한 정신의학자는 죽음을 앞둔 말기환자들의 심리상태를 분노, 증오 , 비탄, 포기, 그리고 수용의 5단계로 정리했다. 임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정리가 안 된 환자들의 감정 변화를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경제적 발전이 앞선 나라일수록 웰빙(well-being)뿐 아니라 웰다잉(well-dying)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죽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이들이 고통스러운 죽음보다는 아름다운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어 한다. 더 나아가 해피 엔딩(happy-ending)을 원한다.

필자의 부친은 평소 당신께서 아프실 때 절대로 병원에 가서 힘들게 마지막 치료를 받지 않게 하라고 당부하신다. 아름답게 그리고 평안하게 당신의 생을 가족과 함께 마치고 싶어 하신단다. 당신께서는 호스피스병원에 동료 분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시면서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시고 계신 것 같다. 수련의 때에 환자의 상태가 임종에 가까웠는데도 미련을 놓지 못하고 중환자실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보호자분들을 종종 목격했었다.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말기 전이 암인데도 부모님께 알리지 않고 힘든 항암치료를 요구하는 자식들도 보았다.

요즘도 수술실이나 중환자실 앞에서 계속 치료를 진행할 것인가 아닌가를 두고 효도경쟁을 벌이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안 그런 경우도 많지만 평소 부모님께 잘 하지 못 하던 분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환자가 숨을 거둔 후 자신들의 마음속에 남아서 괴롭힐 수 있는 찌거지를 청소하려는 것 같아 보인다. 이런 현상을 마음에 한을 남기고 싶어 하지 않은 민족 정서의 산물로 보는 이도 있다. 당시 부모를 생각하는 자식 분들의 심정에 많은 감동을 받은 적도 있었고 나도 저렇게 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당시에 생각지 못했던 윤리적인 문제, 바로 위장된 효도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못 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며 따라하려는 나의 옛 모습은 민족정서 때문 일까 아니면 나도 위장된 효도로 내 자신의 체면을 위한 계획을 세웠던 것이었을까? 아마도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의 고통과 인격을 고려하지도 못했고 생각도 안 했던 것 같다.

정작 말기 환자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며 돌본 가족들은 지나친 치료를 원치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솔로몬 왕에게 와서 한 아기를 두고 서로 자신의 아기라고 우기는 두 여인을 생각나게 한다. 아이를 반으로 잘라서 나누어 주라고 했을 때 진짜 어미인 여인이 자신의 아기가 고통스럽게 죽는 것을 견디지 못 하고 양보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이제 임종을 맞이하는 환자들과 이별을 앞둔 가족들에게 말기 임종환자들의 감정상태, 고통에 대해 설명해주고 이해시키는 일을 의사들이 해주어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말기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시간들이 의사들에게 필요하다. 인간의 존엄과 자기 결정권, 임종환자의 인권 등에 대해 구체적인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죽음을 맞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특히 환자의 임종을 옆에서 지켜야하는 의사들에게 end-of-life care(임종 보살핌)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배우고 나누어야만 하는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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