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우리나라에 여러 모임에서 토론주제로 많이 나오는 것이 안락사(euthunasia)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주장을 펴 보이지만 좀처럼 합의점을 찾기가 힘들다. 나라마다 개념의 차이가 있고, 종교적인 관점, 의료적인 관점, 개인의 주관에 따라 각기 다른 의견을 내어놓고 있다. 무엇보다도 안락사의 개념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한 상태에서 토론을 하게 되니 토론이 더욱 어렵고 답답해진다.

1994년 2월 영국 대법원의 특별위원회는 자발적 안락사에 대한 허용하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에 대해 반대의견을 냈다. 찬반을 두고 열띤 토론 끝에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첫째, 안락사의 남용을 적절히 규제 할 수 있는 법을 만들기가 힘들고, 둘째 고령자와 환자들이 죽기를 요청하는 것이 가능해지면 그래야 한다는 압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17년의 일이지만 짧은 두 문장 안에 진지한 고민과 결론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도 안락사에 대한 정확한 개념정리를 한 후 안락사에 대한 접근을 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인 것 같다. 먼저 안락사는 생물학적 기능이 자연적으로 중단되어 죽음에 이르는 자연사와 구분된다.

안락사는 자연사(질병사, 노화사)가 아닌 비자연사(사고사, 자살, 타살, 안락사)중에 속한다. 안락사는 행위자가 무엇을 적극적으로 했는가(작위,action)와 소극적으로 어떤 행위를 하지 않는 것 (부작위,inaction)에 따라 적극적 안락사(치료중단, 인공호흡기제거, 약물주사)와 소극적 안락사(치료거부, 사전의료지시서)로 나눌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다리를 건너다가 다른 사람을 밀어 강물에 빠져 죽게한 경우와 이미 물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지 않고 죽도록 내버려둔 경우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또한 치료거부나 치료중단이 죽음의 직접원인이 되는지 아닌지에 따라 직접적 안락사와 간접적 안락사로 나누기도 한다.

예를 들러 루게릭병에 걸린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하여 죽게 했다면 약물투여가 사망의 직접적인 행위가 된 직접적 안락사이다. 반면 암환자가 치료를 중단하여 죽게 했다 면 췌장암이 사망의 원인이 되어 간접적 안락사에 해당한다. 안락사의 구분 중에서 윤리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환자의 자율성이 반영 유무이다.

환자가 자율적인 의사표명인 동의(consent)를 했는지 안했는지에 따라 자의적(voluntary) 안락사, 반자의적(involuntary) 안락사, 자의와 무관한(non-voluntary) 안락사로 나누게 된다. 환자가 자발적 동의가 있는 경우를 자의적 안락사라고 하고, 반대의사를 표명했는데도 불구하고 안락사를 시킨 경우를 반자의적 안락사라고 한다. 또한 자신의 의사를 표명할 수 없는 환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를 자의와 무관한 안락사라고 한다. 예를 들어 불치의 희귀병으로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받는 환자의 요청에 의해 환자를 죽여준 행위는 자발적 안락사에 소하며, 노령의 말기 암환자가 항암제 치료를 원하지만 의사나 보호자의 요청에 의해 항암치료를 중단하여 사망하였다면 반자이적 안락사에 속한다. 김할머니와 같이 가족들의 요청에 의한 추정의사로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경우를 자의와 무관한 안락사라고 한다.

이러한 안락사에 대한 개념정리를 한 후 함께 고민하게 되면 안락사에 대한 잘 못된 인식으로 인한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의술과 의약품의 발달로 의료현장에서 피해 갈수 없는 수많은 윤리적인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락사를 허용할 것인가 아난가가 아니라 윤리적으로 허용 가능한 안락사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의료계가 함께 상황에 맞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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