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금년에도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고 있다. 특히 특정지역을 골라가며 게릴라성 폭우가 쏟아져 물난리에 산사태까지 겹치는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젠 비까지도 한 곳만 골라 패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소리로 심란한 사람들까지 웃게 만든다. 장마가 끝나고서도 흐리고 비가 잦으니 찌는 듯한 무더위는 아니지만 그래도 습한 탓에 숨막힐 듯한 느낌이 오히려 답답하다.

무더위가 물러가면서 청명하고 서늘한 날씨가 되면 책읽기에 좋은 계절이 된다해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라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들어왔다. 마치 가을이 아니면 책을 읽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강한 암시를 받고 자라 온 것이다. 하지만 날씨가 좋은 가을은 오히려 명승경계를 찾아보기에도 바쁜 계절이 아니던가? 놀러다니기 바쁘다 보니 사실은 책 읽을 시간이 별로 없다.

그래서 나는 가을보다는 여름에 더 책을 많이 읽게 된다. 하지가 지나면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면서 생체시계가 이른 아침에 눈을 뜨게 만든다. 특히 중복을 넘기면서부터는 창문 방충망에 매달려 울어대는 매미소리까지 가세해서 아침 잠이 달아나게 된다. 유난히 목청이 좋은 말매미다. 어떤 날은 창문을 열어도 시원한 바람은 커녕 후덥지근한 바람이 후끈 몰려들어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침시간이 그나마 가장 서늘할 때이다.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아침에 나는 출근시간을 기다리며 책을 읽는다. 항상 켜져 있는 TV마저도 꿈나라를 헤매는 가족들이 깰세라 침묵을 지키는 고요 속에서 집중이 잘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내가 일어나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느라 달그락거릴 때까지 한 시간 반 정도 집중해서 책을 읽다보면 넘긴 책장이 꽤나 두툼해진다.

책은 아침에만 읽는 것은 아니다. 금년에는 기온으로는 열대야라고는 하지만 아파트 벽이 달구어지지 않아 심각하지는 않다. 그래도 밤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 밤에는 잠이 쉽게 들지 않기 마련이다. 특히 종일 일에 시달리고 퇴근길에 후덥지근한 더위에 몸이 달구어지는 날이면 저녁식사를 마치고 잠깐 졸기도 한다. 이런 날이면 막상 잠자리에 들 무렵에는 눈이 말똥말똥해지기 마련이다. 생체시계가 무너지는 것이다.

후덥지근한 삼복더위의 불청객 열대야를 이기려면 무너진 생체시계를 제대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전문가는 조언한다. 그러기 위하여 낮 시간에 신체활동을 많이 하고 햇볕을 많이 받아야 한다지만 요즘처럼 흐리고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쏟아지면 속수무책이다. 에어컨을 한 시간 이상 틀지 말라는 조언도 후텁지근한 사무실 분위기를 봐서는 어쩔 수 없다. 밤에 술이나 야식을 피하라는 전문가의 조언은 아주 효과적이다. 그리고 자기 전에 미지근한 물로 샤워나 목욕을 하면 몸의 긴장을 풀어주기 때문에 쉽게 잠이 들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바로 오지 않으면 아무래도 생각을 부르게 되고, 생각은 다른 생각을 불러내 생각이 꼬리를 물기 마련이다. 이러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가는데 창문이 희미해지기 일쑤라는 이야기를 한다. 잠자리에 들었는데 바로 잠에 들지 못하면 잠을 청하려 애를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다시 일어나 아침에 읽다 접어둔 책을 펼쳐들면, 금새 책속에 빠져든다.

창밖에서 몰려드는 매미소리까지도 귓등으로 흘러가면서 책읽기를 방해하지 못한다. 책장이 꽤나 넘어가다 보면 순간적으로 책을 든 손목이 흔들하는 순간이 온다. 그러나 이때 일어나 잠자리로 가면 다시 잠이 달아나기 마련이다. 잠시 손에서 책을 내려놓고 눈을 감으면 조금 뒤에 맑은 정신이 돌아온다.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하면 손목에서 느끼는 책의 무게가 감당하기 힘들다 싶을 때가 온다. 이때 잠자리에 들면 눕자마자 곧바로 꿈나라로 날아가기 마련이다.

요즘에는 평소에 붙들고 있던 ‘노화와 죽음’이라는 화두를 넘어 다양한 책들을 읽고 있다. 특히 수필과 인문사회분야로 관심을 넓히고 있다. 그러다보니 활동하고 있는 예스24 블로그 커뮤니티에서 ‘파워문화블로거’로 선정되었고, 출판문화유통센터에서 주관하는 ‘파워북로거’에도 선정되어 책읽기를 강요(?)받고 있는 행복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 주일에 책 한권 읽기’를 목표로 삼았는데 금년에는 지금 책 읽는 속도로 가면 200권까지 읽게 될 것 같다. 마치 책읽기가 본업이 된 것 아닌가하는 착각도 든다.

삼복더위를 잊는 데는 책읽기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가을이 되면 아내와 함께하는 주말 걷기도 해야 하고, 하고 있는 일도 많아지기 때문에 책 읽을 시간을 내기 어려운 것도 감안하면, 이 여름에 열심히 책을 읽어 더위도 쫓고 깨달음도 키워갈 수 있어 좋다.

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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