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많은 죄들이 있지만 생각 만해도 화가 나고 벌을 주고 싶은 범죄가 성범죄이다. 법의 심판과 처벌 전에 인간적으로 혼을 내주고 싶은 것이 성범죄이고 인간 역사상 가장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죄목이다. 성범죄에 대해 더 분노하는 것은 윤리적인 심판이 필요한 부분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혹 윤리적인 판단이 무시된 채로 법률적 판단에 의한 처벌만 이루어질 때나 법망을 빠져나간 경우 불만의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반대로 감정적인 판단을 부추켜 법을 초월한 여론재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어느 경우도 합리적인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진료 중에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를 영구 박탈해야 한다는 의원입법이 있었다. 전문가단체의 자체 처벌을 신뢰할 수 없기에 법으로 다스리겠다는 의도라고 본다.

먼저 전문가의 생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자정활동(self regulation)을 다하지 못 했기 때문에 발생된 현상이라고 판단된다. 전문가단체가 자체적으로 이런 문제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 하고 있는 것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문가단체가 해결해 나가야 할 부분을 법으로 다스리겠다는 발상도 합리적이지는 않다. 합리적인 해결방향을 찾아가야 할 것 같다.

진료 중에 발생하는 성범죄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일어나고 있고 있다. 진료 중에 발생되는 성추행 뿐만 아니라 진료 중 여성 환자의 프라이버시 문제로 나라 전체가 발칵 뒤집혀지는 일들이 외국에서도 진작부터 있어 왔다. 이들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방법을 택했는지 알아보면 우리가 지향해 나가야 할 방향이 보일 것 같다.

의사가 진료 중에 발생된 성범죄가 발생되면 두 가지 형태의 징계가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다. 먼저 법률적인 처벌로 법에 정해진 형량을 선고받고 법집행이 이루어진다. 그와 동시에 진료와 관련된 면허정지나 취소 등의 처벌은 의사협회나 면허관리기관에서 주관하고 있다. 만약 의사단체에서 처벌하는 징계수위가 법률적 처벌보다 엄할 때는 자체 처벌규정을 존중해주고 있다.

전문가집단의 자체 처벌규정은 매우 엄격하고 다양하다. 벌금형에서부터 성추행 방지교육 이수명령, 윤리교육을 몇 시간이상 받을 것, 여성 환자 진료 금지, 보호자 없이는 여성 환자 진료 불가 등 다양하다. 만약 벌금을 물지 않으면 바로 가산금이 붙게 되고 그래도 이행하지 않으면 면허가 바로 정지되고 주어진 처벌을 다 이루기까지 진료를 할 수 없게 된다. 윤리교육도 매번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의 윤리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멀리 떨어진 곳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받아야만 한다.

또한 인터넷과 전문기관지에 이름과 범죄 사실 그리고 받게 된 징계종류까지 공고된다. 엄격하고 무서운 자체 징계규정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엄격함이 있기에 전문가 단체의 자율징계권을 더 신뢰해 주는 것 같다. 형사적인 처벌은 범죄자가 의사이건 누구건 간에 법에 정해진 형량에 따라 공정하게 집행되어져야 한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면허에 관하여서는 전문가단체의 자체 처벌에 위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된다.

금년 상반기에 각 전문가단체에 자율징계권을 부여하기로 한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현재 대통령령 등 하부시행령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이에 부응하여 각 전문가단체도 자율 징계를 강력하게 실행하여 신뢰받는 전문가집단으로 인정받고자 준비 중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전문가단체의 자율징계권을 훼손할 수 있는 추가 법안을 제안한다는 것은 열심히 노력하는 정부나 전문가단체의 의욕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될 수 있다. 법률적인 처벌은 법에게 맡기고 전문가집단에서 다뤄야 할 부분은 전문가집단에게 맡기는 것이 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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