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병원이 무너지고 있다

원가에도 못미치는 보험수가로 매년 중소병원 8~9% '도산'

대형-중소병원간 진료비 부담액 격차 확대, 정책지원 절실

우리나라 의료제도가 세계 5위라고 한다. 누가 어떻게 평가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국민들에게 의료보험으로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를 보장해 주고, 30분 내에 병원에 갈 수 있도록 의료기관이 잘 분포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높은 점수를 받을만하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의료공급체계는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달리 많은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첨단 의료기술과 저렴한 의료비 등을 내세워 해외환자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혜택은 일부 대학병원과 전문병원에 국한된 것일 뿐, 나머지 대부분의 병원, 특히 중소병원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현행법상 중소병원은 종업원 300인 이하의 병원을 의미하지만 이것은 중소기업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한 것일 뿐 병원의 특성을 반영한 것은 아니다. 지극히 노동집약적인 병원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대학병원과 대형병원(500병상 이상의 규모)이 아닌 병원들은 모두 중소병원으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럴 경우 우리나라 병원 중 90% 이상은 중소병원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 의료공급체계는 전적으로 중소병원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중소병원의 경영여건은 매우 열악하다. 매년 8~9%의 중소병원이 경영난으로 도산한다. 우리나라의 어떤 산업도 도산률이 이렇게 높은 업종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더 많은 중소병원들이 새로 생겨나서 전체 병원수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으니 마치 병원들이 큰 돈을 버는 것으로 비쳐진다. 일반인의 상식으로 볼 때 병원경영이 어렵다면 매년 새로운 병원이 그렇게 많이 생길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건 사실이다. 한정된 지면 때문에 그 내용을 상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무리 개원의들의 경영이 어렵다 해도 그 중 5% 정도는 꽤 많은 수입을 올리고, 그들 중 상당수는 그렇게 평생 모은 돈을 병원을 세우는데 투자하며, 또 이들 중 상당수가 병원부도로 평생 일구어 온 사업을 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스스로를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대다수 의사들의 속성이다. 끝까지 살아남는 병원은 아마 절반도 안 될 것이다.

중소병원 경영이 어려운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원가에 미달하는 보험수가 때문이다. 2001년 이후 10년간 보건분야 종사자들의 누적 임금인상률은 90%,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5%임에 비해 건강보험수가인상률은 20%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상황 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병원이 얼마나 되겠는가? 환자진료실적을 크게 늘릴 수 없는 대다수 중소병원들은 생존을 위해서 인력절감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 결과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병상당 1.5~1.6명을 유지하던 중소병원의 인력이 최근 병상당 0.9~1.0명 수준으로 하락하였다. 중소병원의 90% 이상이 의료법에 규정된 법정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간호협회, 약사회, 응급의학회, 중환자학회 등 관련단체에서는 해당직종 인력의 증원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에게 중소병원의 경영난은 관심 밖의 일이다.

만일 중소병원이 없어지고 대형병원만 존재한다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첫째,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이 크게 증가할 것이다. 대학병원의 입원환자 하루 진료비는 50~60만원이지만 중소병원의 진료비는 평균 10~20만원에 불과하다. 물론 질환의 종류와 중증도를 고려하지 않은 단순평균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비교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대학병원의 진료비 부담이 중소병원에 비해 월등히 높은 건 사실이다. GDP 대비 국민의료비 비율도 현재의 7%에서 10% 이상으로 급격히 증가하게 될 것이다.

둘째, 환자가 병원까지 가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현저히 증가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아무리 시골이라도 군내에 최소한 1개 이상의 중소병원이 있어 대다수 주민들이 30분 이내에 병원에 갈 수 있지만 중소병원이 없어진다면 시골사람들이 대도시에 있는 대학병원까지 가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셋째, 실업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할 것이다. 1000병상규모의 대학병원은 100병상규모의 중소병원 10개의 몫을 하는 게 아니라 업무 자동화 및 관리효율화를 통하여 중소병원 15~20개의 몫을 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소병원이 없어질 경우 대부분의 환자들은 인근 대형병원에서 모두 흡수할 수 있지만 종업원은 그럴 수 없으므로 많은 근로자가 직장을 잃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신의료기술 육성이나 의료관광산업 활성화가 아니라 무너지고 있는 중소병원을 살리는 것이다. 중소병원을 살려 의료공급체계의 붕괴를 막아야 한다. 중소병원이 살면 의료비가 절감되고 국민의 의료이용 편의도가 높아지며, 고용이 증대된다. 첨단의료기술의 발전과 해외환자 유치도 안정된 의료공급체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세계 5위의 의료제도도 건전한 의료공급체계 하에서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우선 보험수가를 현실화하고 대형병원과 중소병원간의 진료비 부담액 격차를 확대해야 한다. 지금처럼 진찰료 총액은 그대로 둔 채 환자 본인부담률만 조정하는 방식으로는 대학병원 환자들을 중소병원으로 유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대학병원들로 하여금 환자진료실적을 더욱 증대하도록 내 모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그 보다는 중소병원에 비해 많은 인력과 장비를 갖추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학병원들은 이에 합당한 추가비용을 환자에게 추가로 징수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가를 현실화하지 않고서는 중소병원들에게 의료인력 법정정원을 준수하라고 요구할 수 없지 않겠는가?

둘째,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병원에 장기저리의 자금을 지원해 주어야 한다. 일반 시중은행으로 하여금 병원 재무상태를 평가하여 대출해 주도록 하되 이자의 절반은 정부가 부담해 줌으로써 병원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셋째, 중소기업법에 중소병원의 범주를 별도로 정하도록 해서 중소병원에 맞는 정책적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제조업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

넷째, 법인병원의 인수합병을 허용해야 한다. 인수합병을 허용하면 재벌그룹이 모든 법인병원을 인수할 거라는 주장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터무니없는 말장난일 뿐이다.

다섯째, 의료채권제도와 영리병원제도 도입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도 도입을 미룰 게 아니라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국민들을 대상으로 설득하는 것이 옳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신념이나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반대하고 있을 뿐이다. 시범사업을 해 보면 누구의 주장이 옳고 그른지 금방 드러나지 않겠는가?

성익제
전 병협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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