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송훈
대구 소년원 의무과장
을씨년스러운 날씨, 한강변을 지나 의협회관을 들어설 때까지 햇살은 한 번도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모두가 떠나버린 현장, 의협회관 주위는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현관에서 주말의 한적한 주차장을 지나갈 때까지 무엇 하나 며칠 전의 혼란상을 짐작할만한 자취는 남아있지 않고, 무더운 습기만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경만호 의협회장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만이 아닌 취임 초부터 연이은 여러 가지 위험한 불씨를 잉태하고 있었다.

마노 요양병원의 건립과 운영 관리, 대의원회의 간선제 결정에 대한 암묵적 동의, 부적절한 오바마 건배사, 원격의료의 부적합성, 리베이트 쌍벌제와 한의약 육성법의 국회통과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 와인 사건과 회무 처리의 횡령 의혹 등, 회원들의 바람과는 너무나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그때마다 회원들의 불만은 증폭되어 갔으며, 전의총이라는 신진 개혁단체의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정당성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집행부의 과거 행적을 비판해 온 단체의 대표가 지난 주 단식 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첫날의 모습은 안정적이었으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그러나 다음 날, 느닷없는 전의총 회원들의 의협 회관 진입으로 인해 무폭력 단식의 순수성은 깨어졌다.
경 회장은 이 소식을 듣고 일찌감치 자취를 감추었다. 무대응으로 일관하겠다는 집행부의 방침은 그들의 전략일지는 모르지만, 전의총 회원들의 회관 진입과 집행부의 무책임한 회피 등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는 회원들의 심정을 무척 혼란스럽고 착잡하게 만들었다.

3일째, 노환규 대표의 건강상태의 적신호(?)가 전의총 회원들에 의해 외부에 알려졌고 노심초사한 몇몇 지역 의사회장들이 방문했다.
무슨 단식이 3일 만에 한계를 드러내는가?
준비된 단식은 대체로 일주일은 거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최근의 한진 중공업사태를 보면 보름 이상 무리 없이 지속되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단식인가, 아니면 계산된 정치적 행위인가?
4일째, 노환규 대표는 의협회관 동아홀에서 전의총 비상총회를 주관했으며 전의총은 의협 사무직원들에게 경고성 메시지를 남겼다.

의협 집행부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직원들에게 과정과 결과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단식은 끝이 났다.
그동안 경 만호 회장에게 반발해온 일부 지도자들의 성명서, 그들만의 요란한 성명과 구호 속에서.
단식에서 비롯된 진입과 점거, 결국 초심과는 달리 점령자들의 거친 숨소리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에서 의협 집행부의 부도덕과 무능만이 남겨진 의협회관, 끝난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이제 시작의 한 부분이리라.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회원들의 아픔처럼 한강 고수부지는 폭우의 흔적으로 곳곳에 쓰레기들이 널려있고, 순수한 단식을 열망했던 내 마음도 이미 먼 바다로 떠 내려가 버렸다.
협회장의 재판과 퇴진 문제, 바야흐로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