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들은 ‘통계야말로 가장 절묘한 거짓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특정 의도에 의해 왜곡되었을 때를 말하는 것이지, 주요 정책결정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기본 절차 중 하나가 정책 관련 통계분석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난 6월 14일 건강정책심의위원회는 원내약국 의약품관리료의 연간 140억원(외래 83억원, 입원 57억원) 절감을 의결하였다. 25개 구간의 관리료를 입원환자는 17개 구간으로 축소하고, 외래는 처방 일수와 상관없이 180원(의원)으로 고정하였다.

문제는 원내약국(외래) 절감분 83억원 중 70억원 이상이 정신과에만 강제된다는 것이다. 원외약국의 경우 4349억원 중 901억원 감소로 손실률 20%이라는 통계 하에 진행된 것이지만, 원내약국의 경우 전체 의료수가 중 미미하다는 심증 하에 구체적 통계나 특정과의 관련 유무를 확인하지 않고 건정심의 의결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주요 이슈인 원외약국만 통계 분석을 하고 원내약국에 대해서는 과별 사전 분석이 없어 의약분업 예외 환자를 많이 보는 정신과가 폭탄을 맞은 것이다. 보건복지부도 의도한 바가 아니었으며, 시민단체 또한 이런 현실을 알았을 리 없다.

또한 사용자 대표인 의협이 본회에 의견 조회 한 번만 했었어도 하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즉 통계도 없고, 소통도 없었던 고시 개정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시개정 후 정신과의 호소에 보건복지부가 세밀한 통계를 실시하여, 문제점을 정확히 분석해주었다는 점이다.

24개 임상과가 과당 연간 7000만원씩 절감액을 분담하는 점을 감안하면, 정신과의원들은 연간 70억원, 즉 타과의 100배의 삭감폭탄을 맞은 것이다. 정신과외래의원 요양기관은 700여개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원내조제가 불가능한 수준의 손실이다.

정신과는 익명성 보장과 자타해(自他害) 우려의 문제로 의약분업 예외 환자가 많다. 더구나 개정 의약품관리료는 처방이 1일이든 30일이든 180원(의원)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장기 처방이 많은 과일수록 손실이 큰 것이 특징이다.

정신과의 경우 심사평가원 통계에 의하면 평균 처방일수가 14일 이상으로, 장기처방이 압도적이다. 따라서 손실률 또한 1~3일 정도를 처방하는 타과 의원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다. 또한 정신과는 향정신성 의약품이 많아 의약품 관련 법적 제재를 받기에 약품관리가 어렵다.

의료보호환자는 원내조제가 법적으로 강제까지 되어 있어 한마디로 ‘진퇴양란’인 것이다. 물론 이 글도 어찌 보면 뒷북이다. 그러나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잘못된 정책 결정, 특정과에 강제된 실수를 그대로 둘 수는 없는 일이다.

현재 의협도 이 문제에 유감을 표명했으며, 보건복지부도 보전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가인하가 고통분담 차원에서 이뤄진 만큼 정신과도 타직역 수준의 절감 의사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는 원가 이상의, 적어도 원내처방의 유지가 가능한 수준으로 보전되어야 할 것이다.

정신과도 과(科) 특수성을 향후 의협 등과 긴밀히 협의하는 체제를 구축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실수가 의료비 절감을 위한 정부 정책이 정확한 통계와 긴 호흡, 관계 직역들의 긴밀한 의사소통 속에 이루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해 본다.

노만희

대한신경정신과의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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