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의료윤리의 으뜸은 바로 환자의 자율성보장이다. 왜냐하면 의료라는 것이 환자를 치료하기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의사들 역시 치료자의 입장에서 언제라도 환자의 입장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설명에 근거한 동의 (informed consent)가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충분한 설명에 근거한 동의라는 개념은 여러가지 조건들이 부합되었을 때 그 의미가 살아난다.

윤리학에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한 행위나 동의는 도덕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본다. 의사가 설명을 했더라도 환자가 이해를 못했거나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이뤄지는 경우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라고 볼 수 없다. 특히 스스로 자율적 의사를 표명하지 못하는 환자들(중환자·정신질환환자·영유아·미성년자·정신지체환자)에 대한 자율성은 정상적인 판단과 사고를 할 수 있는 환자들의 자율성 만큼이나 중요하다. 지난 수년사이에 일어났던 보라매사건과 세브란스 김할머니 사건은 의료계와 대한민국 전체 국민들에게 의료 윤리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한 중요한 사건이었다.

법원의 판결이 있었지만 그 판결이 윤리적인 문제나 현실적인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이처럼 자율적 의사를 표명하지 못하는 환자의 의사를 확보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보통 3가지 정도의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첫째는 대리판단의 표준이고 두번째는 순수자율성 표준, 마지막으로 환자 최선의 이익표준이 대체적으로 받아 드려지는 견해이다.

대리판단 표준은 ‘환자를 위해 대리인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가?’가 아니라 ‘이 환자가 의사를 표현 할 수 있다면 이 상황에서 무엇을 원했겠는가?’라는 물음에 따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 판단에는 이 환자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을 대리인으로 선정해 결정하는 방법과 그 환자와 같은 질병에 걸린 합리적인 사람들이 대부분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알아내서 적용시키는 방법이다.

두 번째 방법인 순수자율성 표준은 의사표현 능력을 상실하기 전에 표명한 견해를 대리인이 그대로 전달하는 방법으로 사전의료지시서(advanced directive)나 생전유언(living will)등이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환자의 최선이익표준은 말 그대로 그 상황에서 무엇이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가 찾아내는 삶의 질 표준을 말한다.

이 세 가지 기준은 서로 많이 중복되는 부분이 있고 경우에 따라서 우선순위가 정해지기도 한다.

스스로 자신의 검사나 치료에 대해 결정하지 못하고 주변 가족이나 대리인에 의해 결정을 해야 할 때 아무리 환자의 입장에서 고려를 한다고 해도 미흡한 부분이 있다. 또한 항상 갈등의 문제를 야기 시킬 수 있다.

특히나 법적인 문제에 있어서 의료인이 취해야 할 선택의 폭은 너무나 좁고 위태롭다. 미국처럼 당직 판사가 있어서 의료현장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 판결을 요구할 때 즉각 판결을 해주는 시스템도 없는 상황이다.

보라매 사건 이후 의료현장에서 겪고 있는 의료진의 고충과 환자가족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병원윤리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지만 이것이 법적인 완전한 보호막이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기장 먼저 취해야 할 방법을 찾으라고 하면 바로 사전의료지시서의 작성이라고 생각한다.

자율적인 판단과 능력을 가진 상태에서 나 자신에게 닥칠 상황에 대해 사전에 분명한 의사를 밝혀둠으로서 나 자신이 존엄한 죽음을 맞이 할 수 있고 또한 주변 가족들이나 의사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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