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도 입사 후 5년이라는 시간동안 나와 함께 했던 것은 ‘섬김’이라는 두 단어였다. 이 단어가 처음에는 생소하기만 했었는데 어느새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간호의 길을 가리키는 기준이자 동반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을 제대로 가고 있다고 자만하고 있을 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일이 생겼다.

신규 간호사가 우리 병동에 와서 혼자 업무를 시작한 지 약 두세 달이 지난 저녁근무 때의 일이었다. 모든 신규간호사가 그러하듯이 그날도 예상대로 후배 간호사가 처치를 하거나 활력징후를 측정하러 가서는 간호사실로 돌아오질 않았다.

오히려 그 간호사가 맡고 있는 다른 병실의 보호자와 환자들이 차례차례 나와 다 들어간 수액을 바꾸어 달라고 한다거나, 맞고 있던 수액이 들어가지 않는다거나, 옷을 갈아입게 해 달라거나, 아프다거나, 열이 난다는 등의 숱한 이야기들을 하였다. 당시 앞쪽 병실을 담당하고 있던 나로서는 그러한 환자와 보호자들의 요구사항에 모두 응해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담당하고 있던 앞쪽 병실 뿐 아니라 모든 병실을 맡게 되었고 근무가 끝나기 전 후배 간호사에게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고 말았다. 병동에서 사랑받는 우수한 간호사가 되려면 최소한 자신이 맡은 환자들을 파악하여 그들의 요구를 즉각적으로 들어주는 자세로 임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얼굴 표정이 굳어있으니 많이 웃으라는 이야기도 덧붙여 이야기하였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후배 간호사가 맡았던 병실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 날은 후배 간호사의 휴무일이었다. 병동 순회를 돌고 시간에 맞춰 투약 처치 및 활력징후를 측정하는데 병실마다 환자와 보호자들이 후배 간호사의 안부를 물었다.

“000 간호사는 오늘 쉬나?”
“네. 오늘 쉬어요.”
“아, 그래요? 아쉽네.”
“왜요? 000 간호사가 안보이니 궁금하세요?”
“서툴긴 한데 잘해주려고 애쓰는 게 보여 키도 작아서 링거 달려고 매달리고 하는 것 보면 우리가 해주기도 하고.”
“몸도 힘드신데 그냥 계시지 그랬어요. 그게 저희 일인걸요.”
“그래도 딸자식 같아서 말이지."
“쌩글쌩글 웃고 해서 딸내미 같아서 참 좋던데.”
“그러게 말이예요. 바쁘게 다니면서도 항상 웃고 있으니깐 참 안타깝기도 하고 보기 좋기도 하고 그래요. 먹을 거 하나 더 챙겨주고 싶고 그렇다니깐.”

어찌 보면 그날 했던 대화를 매우 사소하게 생각하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와의 대화를 통해서 후배 간호사가 어느 누구보다도 진정으로 섬김 간호를 실천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식 된 마음으로 환자들을 돌보는 마음 그것이 우리가 섬김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의 가장 기본적인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면 나는 여태껏 어떤 자세로 근무하고 있었나? 과연 정말로 섬김 간호를 실천하고 있었나?” 스스로에게 물어본 질문에 나는 “응. 난 잘 하고 있었어.” 라고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오랜 시간동안 근무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져 버렸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느낄 수 있었다.

환자를 향해 웃고 있으나 백화점 매장의 어느 매장에서 웃고 있을 어느 직원의 웃음과 다를 바가 없었다. 환자들은 단지 환자일 뿐 근무 시간이 지나면 내 마음속에서 그들은 남남이 되어 버렸다.

환자들을 위한 것이 아닌 일의 의미로 간호행위를 했던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을 깨닫고 나니 그 날 후배에게 혼을 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다음 날 나는 후배 간호사에게 그날의 일을 간략하게 이야기하며 이전에 화를 냈던 일을 사과하였다. 후배 간호사는 환한 미소로 괜찮다고 했고 간호처치를 하러 나가서는 많은 선물을 받아 왔다. 그것은 환자 보호자들이 주는 응원과 고마움이 담긴 선물이었다.

이후 몇 달이 지났고 팀장님께서는 나와 그 후배 간호사에게 칭찬간호사로 뽑혔다며 작고 예쁜 금색 USB를 선물로 주셨다. 그것은 어느 선물보다 값진 선물이었다.

이미현
여의도성모병원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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