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기억나지 않은 오래전의 일이다. 내가 ‘기억’이라고 하는 형이상학적인 소유물을 가지기 이전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자주 아팠다고 한다. 2.4kg의 미숙아로 태어난 나는 이미 아토피와 천식을 가지고 있었고, 대학병원의 전문의들도 이유를 모른다는 위장관질환으로 자주 고생을 했다. 할머니는 유명하다고 소문난 의사를 찾아 전국 각지를 들르며 나를 업고 다녔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한의사도 찾아 다녀보고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 굿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침과 한약, 음식으로 알레르기성 체질을 바꿔준다는 유명한 분을 만나게 됐고, 절대로 고쳐지지 않을 것 같던 병들은 자라는 동안 가끔씩 날 귀찮게 할 뿐, 더 이상 힘든 일은 없었다. 그 이후로 어느 지역에 이사를 가든, 우리 가족들은 항상 주치의로 한의사를 찾았다. 그래서인지 의과대학에 입학한 이후로도 여느 의사와는 다르게 한의사에 대한 거부감도 없었고, 오히려 한의학은 공부하고 싶은 분야였다.

어느덧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을 하고, 공중 보건의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필자는 첫해부터 보건지소 발령을 받아 한 분의 한의사 선생님과 같이 진료를 하게 되었다. 인간적으로 참 좋은 선생님이었고, 배울점도 많은 선배같은 분이었다. 하지만 한의사 선생님들과 같이 근무하기를 2년여 남짓 되는 기간 동안 그 한의사 선생님과의 인간적인 관계는 별도로 점점 한의학이라는 분야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으로 다가왔다.

4일간 침을 맞으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는 ‘중풍 예방침’, 침으로 다스리는 ‘치매 예방침’, 한약으로 치료하는 ‘불임사업’ 등 수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공식적으로 보건소에서 매년 시행하는 한방관련 사업들을 보면서 나는 참 궁금했다. 저 치료방법들은 과연 의학적으로,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것일까? 하지만 정작 진료를 하던 한의사 선생님도 논리적인 근거를 나에게 설명하지 못했다.

다만, 한의사학회에서 배워온 치료법이고, 이를 보건소에서 지역보건사업의 일환으로 시행하자는 건의를 받았다고 한다. 자신이 시술한 치료에 대한 논리성도 확립하지 못하면서 한의사들은 한의대에서 내과학, 외과학 등 의학적인 과목들을 이미 배웠고, 의학적·한의학적인 부분 모두를 충분히 고려해서 진료를 할 수 있다며, 스스로의 모순을 만드는 말들을 하곤했다.

이때부터 인가, 때때로 한의학에 대한 고민이 있어 왔다. 그러던 중 얼마 전 ‘한의사육성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되고, 최근 법사위를 통과했다. 이 사건은 의사집단에게 큰 피해가 갈 것이란 예상과 함께, 의사집단의 조직적인 반발과 의사협회장의 1인 시위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이 법안이 의사집단에 어떤 피해가 가는지에 대한 여부는 국민들에게 중요한 일이 아닌 듯하다.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른다. 국민들에게 있어, 의학이든 한의학이든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진료라면 반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더욱이 의사들의 입장에서도 한의사들이 행하는 진료가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이라면 진단에 있어서 현대적인 의료기기를 사용하고 싶다는 의견에도 역시 반대할 명분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필자가 한국사회에 바라는 것은 한의학의 효용가치의 범위를 재설정하는 것이다.

4일간 침을 맞고나서 뇌경색과 출혈이 예방된다는 치료가 논리적 근거가 타당한지를 확인하고 나서, 이 치료에 대한 RCT(randomized controlled trials)나 메타분석 등 통계적으로 유의한 결과를 얻어냈다면, 이 치료에 대해 현대적인 잣대를 들이대든, 과학적인 잣대를 들이대든 의사들은 ‘중풍 예방침’에 대해 의학적인 비난을 할 여지가 없어진다.

과학적인 통계화 작업과 더불어 이를 토대로 한 결과물들의 지식이 수없이 중복될 때야 비로소 현대적이고 과학적이며 한의학적인 치료법이라는 것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 작업이 선행되기 전에 한의사들에게 건강보험료로 치료급여를 지급하고,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할 명분을 주는 것은 비의료인의 진료행위에 건강보험료를 지급하고 CT, MRI를 사용할 권한을 주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의사들은 스스로의 행위가 샤머니즘 조치(shamanistic action)가 아닌 의학적 치료(medical treatment) 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난 후, 의사로서의 권리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김문택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정책고문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