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규 간호사로 입사 했을 당시 우리 병동 환자들의 모습은 내겐 너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머리카락이 없고 너무 말라 곧 쓰러질듯 한 몸으로 식사도 못하고 복수가 찬 배는 터질 듯이 불러 있었다. 가슴에는 중심 정맥 관을 달고 환자 모두 까만색 봉지에 항암제라고 적혀 있는 수액을 달고 있었다.

이런 환자들을 보면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조차 꺼내기 미안한 나는 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너무 막막하고 겁이 났다.
신규다 보니 정신없이 한해가 지났고 그 사이 나는 많은 암 환자들을 만나고 또 떠나보냈다.

한 환자가 암을 진단받고 항암치료를 시작하고 다시 병이 진행되고 항암제를 바꾸고 그리고 떠나보내기까지…
그런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내 마음을 추스르는 것 뿐이었다.

서로 재미있게 이야기 나누던 환자들이 어느 날 의식이 없어지고 컨디션이 악화되면서 곧 그 자리가 비어 가는 과정을 보는 것은 정말 견디기 힘든 일상이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곧 떠나실 분들이니까 정을 주지 말아야지 나만 힘들고 상처받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같다.

그 날도 어김없이 혈액암을 진단받은 새로운 환자가 입원을 했다.
통증이 너무 심해 침상에서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어 했던 박00님.
골수검사를 진행하기 위해 침대를 처치실로 옮기는 과정에서도 그녀는 통증으로 괴로워했다. 몇 차례의 시도 끝에 골수검사를 시행했고 진통제가 많이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고통에 힘들어 하는 그녀를 방으로 모시면서 나도 모르게 “당신이 내가 담당하는 환자라서 너무 무섭고, 두려워요. 이렇게 통증이 심하고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데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울고 있었던 것 같다. 보호자와 함께 쓴 웃음을 짓고 있던 그녀는 두 아이의 어머니였다.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내 진심이 나와 버려 무안한 나머지 자리를 황급히 떠났다.
원래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간호사란, 절망적인 순간에서도 환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치료할 힘을 내도록 해주는 사람들인데… 그때의 난 너무 어리고 무지하며 환자들보다는 내 걱정이 앞섰을 때였다.

그리고 여느 일상과 같이 그날도 난 환자들의 혈압을 재고 항암제를 달고 검사를 보냈고
그녀의 가슴에는 중심정맥관과 함께 항암제가 달려있었다.
매일 만나면서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갔고 또, 그녀의 컨디션도 조금씩 회복해 나가고 있었다.

“머리가 감고 싶어요”
땀으로 얼룩진 얼굴… 통증으로 상체만 올리기에도 힘들어 했던 그녀가 내게 말했다.
환자 17명을 보는 신규 간호사였던 내게 한 환자에게 매달려 머리를 감겨줄 여유란 없었을 때였다. 여기저기서 담당 간호사를 부르고 쉴 틈 없이 할 일이 쏟아지고 경력 간호사들이 한 번에 할 일을 나는 두세 번을 해야 겨우 해결이 되던 때였다.

머리카락을 쓸어 넘길 때마다 한 움큼씩 빠지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보면서 나는…
“당연히 해드려야죠 매일 머리 못 감으셔서 많이 불편하셨죠"라고 말 해버렸다.
그리곤 열심히 그녀의 머리를 감겼다.

며칠 뒤 병동으로 칭찬카드가 하나 들어왔다. 그녀가 내게 쓴 카드였다.
‘병원생활과 치료에 지치고 좌절할 당시 머리를 감겨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말이다.
그 카드를 읽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5분만 투자하면 누구나 할 수 있었던 그 행동에
그녀는 병원생활을 해 나갈 힘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환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게 그리 크고 대단한 것만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그녀는 항암 치료를 하러 병동에 입원 할 때마다, 혹은 외래에서 지나가다 마주칠 때마다 내게 꼭 찾아와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는 한다.

다른 병동으로 옮긴 지금 그녀는 병이 악화되어 다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다. 한번 찾아가 봐야지 하고 생각할 때쯤 이전 병동 수간호사 선생님을 만났다.

“박00님이 얼만 전에 나랑 이야기 하면서 옛날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때 최지영 간호사가 너무 너무 고마웠다고 다시 한 번 더 꼭 전해줘라고 하셨어”

눈물이 핑 돌았다. 그냥 스쳐지나가면서 했던 내 한마디가 의미 없이 했던 행동 하나하나가 환자들에게는 힘이 되고 때로는 좌절이 될 수도 있구나…단지 약을 주고 주사를 놓고 검사를 보내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간호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6년차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나는 신규로 입사했던 그 당시의 충격적이고 힘들었던 일상이 지금은 너무나 무뎌져 아무렇지도 않게 돼버렸을 때 그때를 회상해보며 다시 한 번 더 마음을 다잡아 본다.

최지영
건국대학교 VIP 병동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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