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의료현장에서 발생하는 의료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법의 개입이 점차 증가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인간의 존엄과 환자의 자율성 보장이라는 모토아래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가 단순한 신뢰관계에서 벗어나 법적인 계약관계로 변해가기 때문이다. 현대 의사들은 나날이 변해가는 최신 의학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어려운데 윤리적인 문제나 법적인 문제에 대해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이러한 문제가 법적으로 제도화되어 의사들을 옥죄어 올 때마다 의사들은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리게 된다.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국민들은 의사들을 일반 국민이 아닌 전문가로서 보고 판단하게 된다. 전문가는 전문가다운 전문적인 지식과 교양, 윤리적 수준을 유지해야만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들은 의학적 지식은 전문가일지 몰라도 전문가로서 지켜야 할 교양(의사소통의 기술)이나 윤리적 지식을 배울 기회가 전무했다.

법은 내가 잘 알고 지키면 나를 보호해주는 방패이지만 모르고 행동 할 때에는 무서운 댓가를 치루게 된다. 최근 모 국회의원이 환자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산부인과 진찰실에 들어갈 때 사전에 동의를 받게 하자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제안한 일이 있다.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려는 의도는 알겠으나 에티켓의 문제를 법적인 영역으로 확대 적용시키려는 과잉 입법의도라고 하겠다.

이러한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진 이유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남의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전문가다운 자세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의과대학 교육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그 동안 대학과 수련현장에서 많은 양의 의학지식을 전하는 지식습득 과정에만 치중해 왔다. 이에 관련된 윤리교육과 법, 환자와의 소통기술에 대한 교양교육에는 상대적으로 비중을 적게 두거나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또한 의료계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의료계에서 자율적인 윤리규범을 만들고 지키려는 의지가 약했기 때문에 법적인 개입이 정당화되기도 한다. 전문가 집단으로서 자율성을 달라고 주장했지만, 막상 자율권을 부여한다고 해도 그 자율성을 제대로 운영할 만한 지적 성숙도가 너무나 미흡한 실정이다. 은밀한 진료가 시행되는 산부인과나 비뇨기과 등 뿐만 아니라 다른 과의 진료에서도 환자를 대할 때 의사로서 품위있는 교양을 가지고 진료를 해야 한다.

동료의사들이나 동료 의료인에게 대해서도 마챦가지다. 반말을 한다든지 진료와 관계없는 사적인 이야기를 묻는다든지 환자에게 불쾌감을 주는 말이나 행동을 삼가야 한다. 특히나 학생이나 전공의의 모델이 되는 교수들은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 신중하게 생각하고 교양있게 행동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교수들의 말하는 태도나 억양, 매너 등을 그대로 배우고 익히는 제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올리브나무에서 좋은 올리브가 나오고, 나쁜 올리브나무에서는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 자신을 돌아보아 이러한 부분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고쳐나가야만 희망이 있다. 만약 이러한 부분이 고쳐지지 않고 지속된다면 사회는 법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의사들을 옥죄어 올 것이 눈에 보듯 훤하다. 의사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라고 분해할지 모른다.

자유란 내 마음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자유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희생과 절제 그리고 노력이 필요하다. 전문가로서 존경받고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가능하다면 법의 간섭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잘 하고 있다는 판단을 받아야만 한다. 자율권의 확보에는 자기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 의사들은 이제라도 의과대학 교육과 의사보수교육에 윤리와 법 그리고 환자와의 의사소통을 위한 교양교육을 강화해 가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