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수가 묶어 놓고 임금과 인력은 늘리라고?

수가억제 불구 의료비 연간 15% 증가

인력감소, 진료량 증가 부작용 초래

성익제
전 대한병원협회

사무총장

KOICA 아프간

의료자문관

보건의료노조가 금년도 임단협 관철을 위한 투쟁에 나섰다. 보건의료노조에서는 총액기준 임금 9.55% 인상, 야간 간호수당 100% 증액, 간호등급 1등급 유지 등을 금년도 산별교섭 요구안으로 내 걸었다. 노조측 요구를 수용하려면 중소병원들이 인력은 2배 이상, 임금은 12% 이상 인상해야 할 것이다. 매년 건강보험수가 조정 시 가장 강력하게 수가인상을 반대해 온 노조가 어떤 근거로 이렇게 큰 폭의 임금인상과 인력증원을 요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 뿐 아니라 노조에서는 선택진료제, 상급병실료, 임의비급여 등도 폐지하고, 의료기관의 부대사업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해 오지 않았던가? 병원 수입을 억제하면서 오히려 직원 수를 늘리고 임금을 인상하라면 그 재원은 어디서 나온다는 말인가?

몇몇 대형병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병원들은 수입의 대부분이 건강보험 급여수입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건강보험수가 인상률이 물가상승률의 절반 수준으로 억제되는 상황 하에서 병원 인력과 임금을 늘리라는 노조의 주장은 얼마나 앞 뒤 안 맞는 주장인가? 금년의 예를 보더라도 병원 수가인상률은 1%에 불과한데 4월 현재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이미 5%에 달하고 있는 바, 이것은 오히려 임금을 3% 인하해야만 병원의 수지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가? 병원 측에서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무리한 요구안을 노조에서 제시하는 것은 의도적으로 협상을 결렬시키고 그 책임을 병원 측에 떠넘기기 위한 술수가 아닌가?

지난 10여 년 동안 정부는 의료비를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건강보험수가를 물가와 임금상승률의 절반 이하로 억제해 왔으며, 보건의료노조가 여기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떠한가. 대학병원들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하여 병상당 외래환자 수를 종전에 비해 2배 이상 늘려야 했다. 또한 대학병원 환자 1인당 진료비는 중소병원 보다 2배 이상 높은데 중소병원 환자들이 대학병원으로 몰리니까 당연히 전체의료비는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중소병원은 대학병원처럼 진료실적을 늘릴 수 없으므로 우선 비용절감을 통하여 경영난을 타개하고자 하였다. 전기료, 소모품비, 재료비 등을 줄이고 교통비와 복리후생비를 줄이는 등 필사적인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비용절감 만으로는 수가억제의 거대한 파도를 넘어설 수 없었으므로 중소병원들이 생존을 위해 택한 마지막 수단은 인력 감축이었다. 그 결과 병상당 직원 수는 법정 정원에 훨씬 못 미치는 병상당 1명 미만으로 줄어들게 되었으며, 중소병원의 80% 이상이 간호등급 최하등급인 7등급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들 병원에 대해서 법정정원을 지키라거나 간호등급 1등급을 유지하라는 등의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이들은 필요한 인력을 구할 수도 없지만 인력을 고용할 여력도 없기 때문이다. 처벌규정을 강화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중소병원 인력이 이와 같이 줄어 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1980년대 초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당시 대학병원 직원수는 병상당 1.8-1.9명, 중소병원 직원수는 병상당 1.5-1.6명으로 대학병원과 중소병원간의 직원수 차이는 크지 않았다. 전공의 숫자를 제외하면 대학병원과 중소병원 간에 직원수 차이가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이때의 환자수를 보면 외래환자는 대학병원과 중소병원 공히 병상당 1.8-2.0명, 병상이용률은 대학병원이 80-90%, 중소병원이 70-80% 수준이었으므로 매우 이상적인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이때의 환자 구성을 보면 전체 환자 중 보험환자 비중이 약 50%, 일반수가는 보험수가보다 약 30% 정도 높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현재 대학병원 직원 수는 병상당 1.8-1.9명으로 과거에 비해 다소 증가하였으나 중소병원은 병상당 0.8-1.0명으로 과거에 비해 현저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원인은 건강보험수가 억제에 있다. 1980년대 초만 해도 보험환자 비중이 높지 않아 보험수가가 병원 경영수지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1990년대에는 전국민 보험급여가 시행됨으로써 병원들은 수가가 인하된 것과 같은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특히 2000년 이후에는 보험수가를 물가 및 임금상승률의 절반 이하로 억제함으로써 병원경영은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지속적인 수가억제에도 불구하고 의료비는 오히려 연간 15% 이상 증가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의료시장이 성장하면 의료기관의 경영수지도 그만큼 늘어나야 하는데 가격만 억제하니까 인력은 줄고 진료량은 늘어나는 부작용이 초래된 것이다. 수가를 묶어두면 의료비가 억제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시장의 왜곡을 초래하여 더 큰 의료비 증대로 이어진다는 것은 시장의 기본원리이다. 수가억제는 노조가 추구해야 할 정책이 아닌 것이다. 병원이 없으면 노조도 없고, 병원이 죽으면 임금인상과 직원수 증대도 불가능하다. 당장의 임금인상 때문에 병원을 죽일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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