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OO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건 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 어여쁜 꽃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그 즈음이었다. 당뇨 환자로 한 쪽 발을 절단하고 정형외과로 입원해 치료받으시던 할아버지.

청력이 좋지 않아 혈당 검사나 활력 측정 후에는 “뭐라고? 잘 안 들려. 크게 말해”라는 말에 귀에 대고 크게 말씀드려야 했고, 간혹 할아버지가 잘 안 들리실까봐 크게 말씀드리면, “나 귀 안 먹었어! 오늘은 보청기 꼈잖아”라고 대답하시어 병실에 한가득 웃음을 주셨었다.

봄이 지나 무더운 여름이 오고 더위도 한풀 꺾일 즈음 할아버지는 또 치료를 위해 입원을 오셨다. 쾌유와 건강을 기도드리는 마음에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병원 생활에 유쾌한 에피소드를 가져다주시는 할아버지가 반갑기도 했으리라. 역시나 할아버지께는 전에도 그러했듯 모든 처치 후에는 귀에 가까이 대고 결과를 말씀드려야 했고, 할아버지는 한 손을 들어올리며, 때로는 눈인사와 함께 “수고”하고 답변해 주셨다.

밤 근무 중의 처치는 이른 시간에 진행되는 일이라 발걸음뿐만 아니라 환자와의 의사소통에서도 매우 조심스럽다. 그 날 역시 그랬다. 어스름은 걷히고 해가 떠오를 시각, 대부분의 환자들은 아직 곤히 자고 있고, 적막과 고요가 흐르는 병실의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편히 주무시지 못하고 침대에 반좌위로 계셨고, 나지막한 목소리와 제스처로 활력 측정과 혈당측정을 설명하고 측정하였다. 혈당측정 결과는 70mg/dl 전·후쯤으로 기억난다. 식은땀이 나거나 하진 않았지만 할아버지의 전반적인 안위가 걱정이 되는 순간이었다. 할아버지의 간병인을 깨워 무엇이든 좀 드시게 해야겠지만, 일단 객관적인 증상 확인을 위해서는 할아버지와의 의사소통이 필요했다.

그러나 깨신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보청기를 끼지 않은 할아버지와 고요한 다인실 병실에서 큰 소리로 대화해야한다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순간 학생시절의 중환자실 실습 중에 기관 삽관을 한 환자와 스케치북에 글로써 의사소통을 했던 것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리하여 침상 머리 맡 전등을 켜고 메모지에 “할아버지, 지금 혈당이 00mg/dl에요. 정상치보다 낮은데, 혹시 어지럽거나 식은땀이 나거나 하는 증상은 없으세요? 음료수나 사탕같은 것 좀 드세요. 30분 후에 혈당검사 다시 한 번 해볼게요”라고 적어 보여드렸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시며 “괜찮아. 뭐 좀 먹어야겠군” 대답하셨고, 나는 할아버지의 간병인에게 간식을 좀 챙겨드릴 것을 부탁하고 조심스레 병실을 나왔다.

낮 담당에게 인계가 끝나고 퇴근준비를 하는데 할아버지가 나를 찾는다고 하신다. ‘무슨 일이지? 그나저나 긴 말씀하시려는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려고 준비도 마쳤는데 병실까지 가는 그 발걸음이 괜스레 더 무겁게 느껴졌다.

“아까 혈당검사할 때 나한테 편지 쓴 간호사인가?” “풉~”하고 웃음이 났다. 간단한 메모였는데, 편지라니. 마치 소중한 보물 다루 듯 탁자 위에 고스란히 펼쳐두시곤 “마음이 고우니 얼굴도 예쁘고, 글씨도 예쁘구먼. 난 아까 잠결이라 얼핏보고 말았는데, 나 저혈당에 빠지지 말라고 이렇게 편지를 써 준거 아냐? 내가 또 잘 안 들리니까. 내가 고마워서 얼굴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와 달라고 했지” 하신다.

모든 시선은 나를 향해있고 병실이 떠나갈 듯한 할아버지의 큰 목소리가, 할아버지의 칭찬이 조금은 민망하고 쑥스럽다. 손을 맞잡고 고마움을 표시하는 할아버지의 손길에 무겁고 귀찮았던 발걸음이 부끄러웠지만 예상치 못했던 할아버지의 표현에 기대하지 않았던 상을 받은 어린애 마냥 기분이 들뜬다.

섬김의 마음으로 할아버지를 간호한 나에게 행복과 보람, 뿌듯함이라는 더 큰 선물이 왔다. 할아버지의 미소는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 내가 앞으로 또 다른 환자들을 섬기는데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유혜미

여의도성모병원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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