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문득 평온한 일상 속에서도 숨이 막힐 때가 있다. 이렇게 보건지소 생활을 해온 지도 2년이 훌쩍 넘었건만 아직도 오후 2시를 넘긴 나른함은 때때로 나를 힘들게 한다.

사는 곳은 대도시 가운데지만 고속도로 IC를 옆에 끼고 사는지라, 논밭이 펼쳐지고 새들이 지저귀는 이곳 보건지소까지는 불과 15분여 거리다. 몇 년 사이에 지하철이 들어선다 하고, 지소 앞 왕복 2차선의 좁디좁은 도로는 어느새 6차선의 넓은 도로가 되었다. 시골 내음이 나던 한적하던 길에 차들이 바삐 다니기 시작한 것도 내 숨통을 조이는 한가지 이유일 것이리라.

근간에 그럭저럭 참고 지내는가 했더니, 몇 일 사이에 숨이 턱까지 차 올라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무작정 어디론가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막상 떠나려니 무작정 차를 몰고 핸들이 이끄는 대로 가는 것도 좋지만 반나절 가량 짧게 다녀올 목적이었기에 가까운 곳을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때마침 4월 23일부터 5월 1일까지 비슬산 참꽃축제를 한다 하길래 지소 인근 비슬산을 한번 넘어 돌아 오기로 마음먹었다.(참꽃은 진달래를 이르는 말이다) 비슬산은 대견봉을 중심으로 갖가지 명승고적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관광지건만, 불과 20여분 거리에서 2년을 근무하며 한번도 관심을 가지고 둘러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출발한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시골길은 평일 오후인지라 오가는 차가 뜸하여 내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었고, 조용하게 틀어놓은 오래된 팝송을 배경으로 비탈길 아래 계곡을 수놓은 구름은 내 가슴을 시원하게 적셔 주었다. 한번씩 들르던 산장식당을 지나고 자연휴양림을 올라가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유가사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솔길 오른쪽 너머 산비탈엔 참꽃들이 예쁜 분홍빛 구름을 만들어 번져 있길래, 가까이서 보기 위해 길을 벗어나 다가갔다. 구두에 진흙이 묻고 바지에 흙탕물이 번져도 아름다운 꽃을 가까이서 보기위한 내 마음은 몸이 더러워지는 것을 개의치 않더라. 적당히 내린 비에 촉촉이 젖은 참꽃은 그저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더 할 나위없는 즐거움이었다. 사는 곳이 인근 대도시 인지라 몇 해 전 화창한 봄날에 들판에 흐드러지게 핀 참꽃을 보러 왔을 적에는 큰 감흥도 없었거니와 다른 지역의 볼거리에 비해 크게 실망하고 돌아간 적이 있었는데, 같은 곳의 꽃이었건만 내 마음에 따라 이토록 아름다움이 달라 보일 수 있는 것에 적지 않음 놀라움이 일었다.

유가사를 들러 좀 더 마음의 평온을 얻고자 했으나 문득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5시가 가까워지고 있어 서둘러 주차장에 돌아와 운전대를 잡았다. 돌아오는 길은 현풍방향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재를 넘어 나오려고 조금 서둘러 운전하려 했지만, 길가에ㅔ 흐드러지게 핀 분홍빛 참꽃이 내 발길을 붙잡는지라 잠시 차에서 내려 핸드폰에 경치도 담았다. 다시 내리기 시작한 비 때문에 내려 오는 길엔 산기슭엔 안개가 내려 앉았고, 안개보다 더 흐드러진 참꽃들이 나를 보내기 싫어하여 내 발길을 늦추며 배웅한 건지도 모르겠다.

김문택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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