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A씨가 운영하는 B이비인후과에 갑자기 어떤 사람들이 공문 한 장을 들고 조사를 하겠다며 들이닥친다. 아무 예고도 없이 찾아온 이 사람들은 진료중인 A씨에게 다짜고짜 전산자료 등 서류를 내놓으라고 한다. A씨는 물론이고 환자 C씨도 당황스러울 뿐이다. 진료실 분위기는 마치 취조실처럼 변했다.

이 의원에 진료비를 허위적으로 청구했다는 사실을 조사하겠다고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단순한 전산 착오로 인한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불법적인 행위가 전혀 없었는데도, 이 의원과 A씨는 환자 앞에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런 일이 의료기관에 비일비재하다. 의료기관들이 급여사후 관리라는 명목으로 보건복지부장관 명의의 현지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급여사후 관리는 의료기관에서 환자가 진료를 받은 것에 대해 의료기관이 기준에 맞게 진료비를 산정하여 의료비를 보험자에게 청구하고 환자에게 받았는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확인 과정에서 부당과 허위가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면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해 조사하는 것이다.

매년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건강보험 재정의 누수를 막고 건강보험 가입자의 수급권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이론상으로는 너무나 당연하고 마땅하며 국민의 입장에서는 일견 바람직해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현지조사의 실태를 들여다보면 의료인의 희생만을 강요하고 이로 인해 의료기관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금전적으로 피해를 보며 멍들어가고 있는지는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의료인으로서 의료기관을 운영하며 살아남기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지 그들만이 알 뿐이다.

물론 전제조건은 명백히 허위?부당을 일삼으며 부도덕하고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아 마땅한 기관에 대해서는 색출하여 뿌리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지조사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허위?부당에 대한 명확한 개념정리가 되어있지 않고 불합리한 급여기준이 개선이 되지 않아 그야말v로 생사람을 잡는 경우가 많고 처벌 또한 대역죄인의 취급을 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단순한 입력 오류조차 허위 및 부당청구로 간주되어 의료인이 범법자 취급을 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의사와 환자와의 신뢰관계는 무너지고 해당기관에 대해서 의료인은 기피할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보상은 누가 마련해 주는 것인가?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조사에 충실히 임했는데 조사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의사가 피해를 본 환자와의 신뢰의 문제와 경제적인 손실은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그 뿐만이 아니다, 환자의 형태는 다양하여 같은 감기라도 환자의 개인적 특성에 따라 처방내역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전산상으로 비교하여 다른 기관과 다르게 청구했다는 이유로 공단에서 진료비내역 청구알림을 보내어 시정하라고 하고 자율시정통보서 보내서 시정하라고 하고, 수시로 환자에게 전화하여 진료내용 확인하고 공단직원이 의료기관에 방문하여 현지확인 하고 있다. 이렇듯 의사의 진료영역이 비전문가 집단에서 이래라 저래라 해야하는 분야인지, 의사가 진료시 소신은 날려버려야하는 것인지.

뿐만 아니다 의사들에 대한 처벌은 더욱 가혹하다. 문제가 발생하면 면허자격정지 및 영업정지, 형사고발, 명단공표 등 대역죄인에 준하는 패널티만 적용할 뿐 모범 의료기관에 대한 보상체계는 없다. 즉 당근은 없고 채찍만 가하는 비효과적인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의료정책연구소에서 발표한 “의료기관 현지조사에 대한 법적검토와 개선방안”에 지적된 ▲조사공무원의 지침 준수 의무에 관한 원칙 제시 ▲통지제도 등의 개선 ▲현지조사기간의 조정 등 ▲현지조사 범위 확대의 제한 ▲조사인력 수의 제한 ▲현지조사의 연기요청에 관한 통지의무 ▲그 밖의 세부기준의 개선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 시급히 개선되길 바라며 더 이상 의료인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현지조사는 사라지길 바란다.

이혁
대한의사협회보험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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