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옆에 있는 평화의 공원에는 초승달 모양의 호수가 있다. 호수 가장자리의 나무로 만든 데크는 공원을 찾는 아이들이 많이 좋아하는 곳이다. 그 이유는 나무 데크에서 호수 물속을 들여다보면 유영하는 물고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물고기들이 열을 지어 나무데크를 따라 유영하는 모습이 마치 사열대 앞을 지나는 군대 행렬처럼 느껴지는 점이다.

그 물고기들이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우로 봐!’하고 경례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필자의 보수적 성향 때문일까? 의무부대 출신인 필자가 사열의식을 기억하는 것은 꼭 보수적 성향 때문이기 보다는 학창시절 받았던 교련수업의 영향이 지금까지도 잠재의식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 같다.

열병(閱兵)과 분열(分列)로 구성되는 사열의식(査閱儀式)은 제식훈련의 결과를 평가하는 군대의식의 꽃이다. 부대의 구성원이 하나로 되어 있어야 사열의식을 일사분란하게 해낼 수 있는 것이다. 분열(分列)은 더욱 그러하다.

◇‘분열’의 정반대 의미=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민주화된 세상에서 뜬금없이 군사용어를 화제에 올리는 이유는 한글이 가지는 다양한 의미를 짚어 의료계의 현실에 대한 고민을 적어보고 싶어서다. 앞서 인용한 ‘분열’은 부대가 대오를 갖추어 행진하는 사열의식 용어인 분열(分列) 외에 세포나 집단이 쪼개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분열(分裂)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분열(分列)과 분열(分裂)은 한글표기는 같지만 그 의미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2000년 의약분업사태를 기점으로 표면화된 의료계의 갈등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전공분야 간, 세대 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이제는 폭발의 임계점에 도달한 것 같다. 특히 지금의 대한의사협회 집행부는 임무개시 이래로 회원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대립각 세우기에 여념이 없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 결과 회원들로부터 퇴진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대의원총회에서 논의되는 참담한 상황에 까지 이르렀다. 그 이면에는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선인의 말씀과는 달리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일들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황인식이 실종되었는지 일신을 내세운 개편이 실상은 집행부마저도 분열(分裂)하는 막장드라마로 치닫고 있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 통합의 리더십 필요= 10여년이 넘게 입지를 위협받아온 의료계의 상황은 여전히 어려워지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회원들의 공통적인 인식이다. 이럴 때일수록 통합과 단결을 이루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의료계는 더 잘게 쪼개지는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그것은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지도자를 내세우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가르치는 대목이 많다. 제17장에서는 네 종류의 지도자를 꼽고 있다.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그 존재 정도만 알려진 지도자, 그 다음은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칭찬하는 지도자, 그 다음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지도자, 가장 좋지 못한 것은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는 지도자(太上, 不知有之. 其次, 親而譽之. 其次, 畏之. 侮之)”라는 것이다.

오강남 교수는 “가장 저질인 지도자는 스스로 도덕성을 상실하고 부패했기 때문에 아무리 사회정의니 인도주의니 하고 떠들어도 사람들이 믿지 않고 조석으로 법령, 훈령, 지시를 내려도 사람들이 콧방귀나 뀌는 불신사회를 만들고 있다”고 해설하고 있다. 작금의 의료계 현실을 꼬집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분열(分裂)된 의료계를 통합하여 일사불란한 분열(分列)에 임할 수 있는 지도자가 절대적으로 아쉬운 시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림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섬기는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를 찾아야 할 시점이다.

다시 도덕경으로 돌아가 제66장에 “백성 위에 있고자 하면 말에서 스스로를 낮추어야하고, 백성 앞에 서고자 하면 스스로 몸을 뒤에 두어야 한다(是而欲上民, 必而言下之, 欲先民, 必而身後之)”라는 말씀을 행할 지도자 말이다.

양기화

전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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