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생명의료윤리의 네 원칙 중에서 악행금지의 원칙(피해회피의 원칙)이 있다. 이 원칙은 환자를 진료 할 때 피해를 주는 일에는 의술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원칙이다. 악행(피해)이란 넓게는 명예, 재산, 사생할, 자유 등의 피해을 의미하나 좁은 의미로는 신체적 심리적 이해관계의 피해를 말한다. 의사에게 요구되는 살인 하지 말라, 고통을 가하지 말라, 불구로 만들지 말라, 화나게 하지 말라, 재화를 빼앗지 말라등으로 더 구체화 될 수 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중 “나는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키는데 결코 사용하지 않겠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바로 악행 금지의 원칙을 말하는 것이다. 최근 수면마취약인 프로포폴의 왜곡된 사용, 마약류의 음성적 처방, 인센티브를 위한 일부 대형병원의사들의 무리한 검사 등 많은 문제가 진료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쯤에서 우리는 의료전문가로서 우리들이 하는 의료행위가 선행인지 악행인지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복잡하고 막연해 보이는 문제를 만났을 때 명확한 기준을 정해 놓고 그 기준에 맞추어 보면 상황이 쉽게 이해되고 정리가 되는 것이 윤리이다. 윤리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행위는 해야만 하는 것(obligatory), 해서는 안 되는 것(forbidden), 허용 가능한 것(permissible)으로 나누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는 진료를 크게 세 가지 범주로 구분해 보면 우리의 진료 행위가 어디에 속하는 것인지 가름하기 가 쉬울 것 같다.

그 진료를 하지 않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진료( obligatory to treat )와 그 진료를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기 때문에 금지된 진료( obligatory not to treat )가 있다. 이 두 부류의 치료는 의사로서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의무적인 진료의 형태이다. 세 번째 부류로의 진료 들은 그 진료는 해도 그만이고 하지 않아도 무방한 중립적인 진료 ( neutral )와 그 진료는 하지 않아도 (혹은 해도) 무방하나, 하면(혹은 하지 않으면) 도덕적으로 칭찬을 받는 의무 이상의 진료(supererogatory)로 선택적인 진료( optional to treat )의 부류에 속한다. 해야 만하는 진료를 하지 않았을 때와 해서는 안 되는 치료를 함으로써 환자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악행금지의 원칙을 어기게 되는 것이다.

의사로서 지식습득을 게을리 하여 꼭 해야만 하는 시술이나 처방을 하지 않았을 때도 악행이 된다. 또한 하지 말아야하는 금기사항을 무시한 채로 처방을 하거나 시술을 하는 것(malpractice) 역시 악행에 속한다. 의사가 하는 행위는 다 의술로 착각하고 있는 동료도 있다. 또 이런 기준에 대한 교육을 받아 보지 못해서 윤리적 감각이 둔해져서 무분별한 진료를 행하는 동료도 있을 수 있다. 수면마취약인 프로포폴을 수면마취가 아닌 상황에 처방을 한 진료행위와 노상구걸을 하는 사람에게 한 번에 600알이 넘는 마약성 약물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처방한 행위, 그리고 자신의 인센티브를 높이기 위해 고가의 검사를 무리하게 시행하는 일부 대형병원의 진료행태는 어디에 속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행위들은 다 악행에 속한다.

그렇다면 심사기준에 벗어난 진료를 한 경우는 어떻게 분류를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생긴다. 심사평가원의 심사기준을 넘어섰다고 악행을 한 의사라고 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심사기준은 한정된 보험재원에 맞추어 최소한의 보험기준을 만들어 놓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의사가 정확한 의학적 판단에 의해 환자를 위한 처방이나 시술을 행하는 것은 악행이라 할 수 없다. 이제는 이를 두고 의사들이 부당청구를 한 것으로 더 이상 매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윤리적인 의사로서 살기 위해서는 올바른 진료를 행하는 것 뿐 아니라 왜곡된 진료를 유발시키는 심사기준과 병원운영행태를 함께 고쳐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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