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자율성의 원칙, 악행금지의 원칙, 선행의 원칙, 정의의 원칙으로 알려진 생명의료윤리의 네 원칙 중에서 자율성의 원칙은 가장 강조되는 생명윤리학에서 최고의 가치를 지닌 원리이다. 의료에서 자율성은 환자가 자신의 생명과 치료에 대해 의사의 의견을 들은 후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를 말한다.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성인의 자율성이 다른 생명윤리원칙과 상충 할 때 자율성은 거의 항상 우선권을 갖는다. 환자가 올바른 자율적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의사는 충분한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informed consent)는 환자의 자율성의 보장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최근 법정에서 의료분쟁소송이 진행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바로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가 있었는지를 보고 판결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학자들은 최근의 이런 추세를 자율성의 광풍에 휘말리고 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강조 되고 있다.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가 과거에 의사가 치료의 주체로 역할을 해온 강력한 온정적 간섭주의(paternalism)에서 약한 온정적 간섭주의로 더 나아가 파트너십(partnership)의 관계로 변해가고 있다. 환자의 자율성을 점점 강조해가는 시대의 흐름이라도 하겠다. 하지만 자율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오히려 자율성의 남용현상을 진료현장에서 흔히 접하게 된다.

자율성(autonomy)은 그리스어 'auto'(자아)와 'nomos'(규범)의 합성어로 자기규범(self-law)를 의미한다. 자율성을 생각할 때 자유(liberty)를 생각해보아야한다. 자유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freedom)가 아니라, 옳은 것을 행 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무엇이나 할 수 있다라는 개인주의적 자유의 개념에 국한되어버리면 의료현장에서는 환자의 자율성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강조되어 버릴 수 있다. 다이엘 칼라한 (Daniel Callahan)은 환자 스스로가 죽음을 결정하는 안락사를 두고 고삐 풀린 자율성이라고 표현했다.

자율성을 최고의 선으로 몰고 가는 현상을 두고 한 적절한 표현이다. 우리나라 진료현장에서도 자가진단을 미리 하고 오는 환자분들이 무리하게 주사처방을 요구하는 것도 하나의 작은 예다. 환자들이 내 돈을 내고 내가 검사를 해보겠다며 무리하게 고가의 검사인 CT나 MRI촬영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자율성의 남용에 해당된다. 이는 정의의 원칙(배분의 정의)에도 위배된다. 한정된 의료자원이 정의롭게 배분되지 못함으로 꼭 검사가 필요한 환자들이 순서를 기다리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의사들이 환자에게 환자의 상태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치료의 진행과정을 설명해줌으로서 예방 될 수 있다. 보험재정의 공정한 활용을 위해 환자들이 의사에게 무리한 검사를 요구하지 말 것을 홍보해야한다. 또한 정부는 제도적인 뒷받침을 준비해서 자율성 남용이라는 도덕적 해이(Moral hazzard)현상을 막도록 정책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보장성을 높인다고 선심성으로 보험급여항목을 늘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의사들도 전문가로서의 자율성을 확보하도록 스스로 노력해야한다. 최근 대형병원의 의사들이 고가검사를 진단 초기부터 자신의 인센티브를 위해서 처방을 낸다는 기사가 있었다. 이러한 행위는 전문가로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한다. 또한 이런 왜곡된 진료를 부추키는 병원의 운영시스템을 개선해야할 필요가 있다.

검사의 필요성과 목적을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거나, 검사를 종용하는 듯 한 분위기의 진료행위를 하는 것은 환자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것을 넘어 악행금지 원칙에도 위배될 수 있다. 자율성은 스스로 절제하는 가운데 최선의 이익을 추구할 때 그 빛을 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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