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연
여의도성모병원간호사
입퇴원이 잦고 장기 환자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우리병동에 유일하게 장기 환자 한분이 계신다.

처음에 환자는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 나머지 한쪽도 외고정기로 고정한 상태에다가 한쪽 팔은 부목을 적용하고 있었다. 주차요원이었던 아저씨는 후진하는 차에 불의의 사고를 당하셨다 한다. 하루아침에 한쪽다리를 잃고 다른 한쪽도 잃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저씨와 가족들은 절망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저씨는 사소한 일에도 호출기를 누르는 일이 많으셨다. 항상 손발이 되어주는 아내가 잠깐 집에라도 가는 날이면 간호사실에 설치된 74번 호출기는 무섭게 울려댔다. 하루는 밤 근무 출근을 했는데 아주머니께서 간호사실로 나와 나를 쳐다보고 계신 것이었다.

“하실 말씀 있으세요?”라고 묻자 아주머니는 미안해하시며 “나, 집에 좀 갈일이 있는데 오늘 집에서 자고 내일 일찍 오면 안 될까?”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환자상태를 이야기하며 보호자가 꼭 계셔야 함을 설명했다. 아주머니는 알겠다고 한 뒤 한참을 복도를 서성거리며 통화를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나에게 와서 꼭 가야한다며 남편을 잘 봐달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가능한 아침에 빨리 오시겠다는 다짐을 받고 보호자를 집에 다녀오시도록 했다. 아주머니가 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 역시나 74번 호출기는 울렸다.

“불 좀 켜주세요” “침대 좀 올려주세요” “커튼 좀 쳐 주세요” “침대 내려주세요” “소변 마려워요” 등등. 처음에는 아무것도 하실 수 없는 상태의 환자이기에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밤새 울리는 호출기로 인해 아저씨 옆에 계시지 않은 보호자가 야속하기까지 했다.

며칠 뒤 나는 섭취량과 배설량 측정을 위해 아주머니에게 가서 식사량과 소변 량을 물어보았다. 아주머니가 식사량을 말해주시는데 그 목소리가 점점 울먹이는 목소리로 바뀌어갔다. 나는 당황스러워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라고 묻자 아주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저씨가 변 볼까봐 밥을 안 먹네요. 변보면 내가 치워야 된다고, 미안하다고 밥을 잘 안 먹을라해. 많이 먹어야 회복도 빨리 될 낀데”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눈물이 핑 돌면서 지난 밤 근무 때가 생각났다. 콜 벨이 울리고, 가서 원하는 것을 해드리고 또 그럴 때마다 아저씨는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으셨다. 밤새 호출기를 누르고 미안함에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던 아저씨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호출기 소리를 귀찮게 느꼈었던 내 마음이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했다.

지금은 부목도 외고정기도 제거하고 처음보다 많이 건강해진 아저씨, 요즘은 라디오나 TV 소리에 민감하시다. 오늘도 호출기가 울리고 나는 달려간다.

“라디오 볼륨 좀 올려 주세요!”
“이 정도요? 이 정도면 괜찮으세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지만 섬기는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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