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가 또 인하되는 모양이다. 좋은 일이다. 환자는 싼 값에 약을 구입할 수 있어 좋고, 정부는 건보재정을 절감할 수 있어 좋다. 그런데 제약회사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이번에는 오리지널 약값도 내린다고 하는데 제네릭을 만드는 회사가 더 손해라고 한다. 오리지널에 비해 제네릭의 인하 폭이 더 커서 그런 모양이다.

작년부터 시작한 저가구매 인센티브는 대형종합병원에게 꽤 괜찮은 제도인 것 같다. 우리나라의 대표 종합병원의 하나인 모 대학병원이 이 제도로 받은 인센티브가 250억 원 정도라니 환자 진료하는 것보다 낫다. 전국에 그런 규모의 병원이 많으니 전국적으로 얻은 인센티브가 족히 수천억 원은 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만큼 제약업계는 손해를 본 셈이다.

얼마 전 정부는 CT, MRI 같은 영상진단 관련 진료비를 일방적으로 그것도 대폭 인하하였다. 최근 들어 약제비나 의료비 인하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이뿐 만이 아니다. 보험재정의 안정화를 위하여 DRG(포괄수가제)도 불사 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추진 중인 사업 중에 HT산업이라는 것이 있다. 보건의료산업이다. 보건의료산업은 IT산업의 뒤를 이을 미래 성장산업으로 통신이나 자동차보다도 시장 규모가 클 것이라고 한다. HT산업은 질병의 예방·진단·치료뿐 만이 아니라 환자의 재활·관리·지원에 사용되는 모든 기술로 의료기기·의약품·내외과적 의료행위뿐 만이 아니라 관련된 모든 지식을 포괄한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2013년까지 1조 8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하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복지부는 ‘콜럼버스 프로젝트’라는 것을 가동시켰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산업이 미국에 상륙하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올해 처음 시행되는 이 사업에 제약사·의료기기회사·화장품회사 41곳이 선정되었다.

HT라고 불리는 보건의료산업이 병원산업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HT의 결과물인 약이나 기기·장비·기술을 주로 사용하는 곳은 병·의원이다. 따라서 싫든 좋든 HT산업은 의료계와 관련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런데 정부가 시장에 보내는 신호가 헷갈린다. 한쪽으로는 수조원의 연구비를 투자해서 HT산업을 키우겠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HT산업의 결과물을 사용해야 하는 의료비와 약값을 무차별적으로 인하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HT산업에 대한 의지보다는 보험재정 안정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너무 확고하다는 점이다.

의료장비나 의료기기의 국내 시장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로지 수출만을 위해 투자를 할 회사는 그리 많지 않다. 안정적인 국내 시장이 있은 다음에 수출경쟁력을 갖는 것이 보통이다.

좋은 기술이 경쟁력에 중요하기는 하지만 필수 요소는 아니다. 그보다는 그 기술에 투자할 자본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규제일변도의 국내 의료시장에 기술이 있다고 투자할 자본이 있을까. 보험재정 절감이 최상의 국가목표인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HT산업에 투자할 기업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미국이 HT산업에서 성공하는 것은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적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복지부는 업무의 대부분이 규제위주여서 규제에는 익숙하지만 산업을 일으키거나 키우는 데에도 서툰 부서이다. 나라의 미래가 일관되고 예측 가능한 정책 없이 정권의 구호에 의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김형규

고려의대 내과 교수

의약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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