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근무를 하기위해 들어선 병동은 어수선해 보였다.

“바쁜가 보구나. 밤 근무도 바쁠 텐데 중한 환자가 왔나?” 걱정스런 마음으로 병동을 둘러보았다. 461호실에서 여러 명의 의사가 한 환자를 둘러싸고 소독을 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에어컨 에어백이 터지는 바람에 부상을 입어 응급으로 안구적출수술을 받은 안과 환자 소독을 하는 중이라고 하였다. 가슴, 양팔이 족히 2도는 되어 보이는 화상에 왼쪽 손은 새까맣게 타들어가서 재와 같았다.

어쩌면 이럴 수가…. 짙은 안스러움이 마음속으로 지나간다. 남편의 참담한 모습을 보는 젊은 아내의 심정은 어디까지 무너지고 있을까. 내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맺힌다.

소독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환자의 고통 또한 심해졌다. 화상 환자 소독 물품이 많지 않은 우리병동에서 외과병동으로 들락 거리기를 여러 번 해야만 했다.

게다가 환자가 가슴통증을 호소해 심전도, 흉부X-선 촬영, 피검사, 동맥혈검사 등 나는 다른 모든 업무를 접어둔 채 그 환자와 관련된 일에만 매달려야 했다. 새벽 1시가 넘어서야 그 환자의 일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흑 흑 흑…”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환자의 젊은 아내였다. 갑자기 들이닥친 사고로 울 겨를조차 없었을 보호자.

아기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아직 붓기가 빠지지 않은 얼굴에는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했다. 남편 사고 소식에 갓난 아기를 누군가에게 허겁지겁 맡기고 응급실에 정신없이 뛰어 왔고, 몇 시간 후 응급수술 들어간 남편을 가슴 졸이며 기다렸을 보호자.

수술실에서 나온 젊은 남편의 한 쪽 눈은 사라졌고, 화상이 심해 내일 또 응급으로 피부이식술을 해야 한다고 하니…. 그 여린 부인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넋 나간 얼굴을 내게 돌렸다. 공포에 질린 그 눈빛이 내 맘을 아리게 했다.

간호사이기 전에 같은 여자로서 그 젊은 여인을 안아주고 보듬어 주고 싶었다. 어제부터 물 한 모금 못 먹었을 보호자에게 빵 한 조각과 주스를 주며, “먹고 힘을 내야한다”고 격려했다.

담요와 베개를 가져다 주고 오늘밤 꼭 주무셔야 한다고, 그래야 내일 남편 곁을 지킬 수 있다고. 새까맣게 변한 입술을 떨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부인을 다독거렸다.

얼마 전에 어린 아들이 내게 한 질문이 떠올랐다. “엄마! 간호사는 무슨 일을 해요?”

“아픈 환자에게 엄마가 되어주는 거야. 네가 아플 때 엄마가 너를 사랑하니까, 약도 주고 열이 나면 물수건으로 몸도 적셔 주고, 배가 아프면 배도 문질러 주고, 밥도 먹여 주잖아. 간호사는 아픈 환자에게 엄마 같은 그런 일을 하는 거야.”

“아! 그렇구나”

어린 아들은 이해한 듯 대답했다. 진통제를 맞고 눈과 양팔이 붕대로 감겨 주무시는 환자와 그 곁에서 눈물자국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웅크리고 있는 보호자를 바라본다.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잠속에서 조차 두려움에 떨고 있으리라. 오늘도 나는 병실 침대위에 누워 있는 ‘힘든 환자들의 엄마’가 된다. 아니 ‘보호자의 엄마’까지도 되어야 한다.

나는 간호사인 한 환자와 보호자의 엄마로 살아가고 싶다.

김선영

여의도성모병원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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