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생명의 존엄함, 인권의 소중함에 대한 많은 이론과 철학적 접근이 있었다. 하지만 인류역사상 하나의 명문화된 강령으로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47년 제정된 ‘뉘른베르그 강령(The Nuremberg Code)’이다.

이 강령은 2차 대전 후 열린 전범재판인 뉘른베르그 재판(1946년 10월부터 1947년 8월) 이후 만들어지면서 같은 이름을 따서 뉘른베르그 강령이 되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의 기본원칙을 담은 최초의 강령이다. 이 강령이 만들어진 배경을 살펴보면 의사로서 생명윤리가 얼마나 중요하고 또 지키려고 노력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20세기에서 생명윤리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사건을 들라고 하면 아마도 2차 대전 중에 저질러진 인체실험일 것이다. 마루타라는 말로 잘 알려진 일본 731부대의 인체실험과 독일군이 전쟁포로와 유대인 난민들을 대상으로 저질렀던 생체실험 사건이다. 731부대는 충격적이고 잔인한 생체실험을 자행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인과 중국인 3000여명을 산채로 냉동시키는 실험, 세균주입 실험, 산 채로 생체를 해부하는 실험 등 가히 상상을 초월한 엽기적인 실험을 저질렀다. ‘죽음의 천사(Angel of death)’로 알려진 요셉 멩겔레, 칼 브란트 등의 독일 의사들은 유대인과 전쟁포로들에게 말라리아, 티푸스를 감염시키는 실험, 독극물 주입 후 죽어가는 것을 관찰하는 실험, 저온 등의 극한 상황에서 죽어가는 생체실험 등을 실시했다.

이들은 전쟁이 끝난 후 뉘른베르그 전범재판에 ‘전쟁범죄 및 인류에 반한 죄’로 회부되었다. 재판에 회부된 독일인 피고 23명 중 20명이 의사면허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의 731부대를 이끌었던 이시이 시로 중장 역시 의사였다. 의사들이 생명에 대한 잘못된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 얼마나 무서운 일을 벌일 수 있는지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독일의 의사들은 전범재판을 통해 사형이나 무기형 등 무거운 형을 받았지만, 일본의 경우 이시이 시로 및 731부대원들은 실험결과를 가지고 미군과 협상을 하고, 미군에 협조하는 조건으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인으로서 조금 억울한 것 같다.

뉘른베르그 강령의 탄생에는 이런 비극적인 배경이 있다. 뉘른베르그 강령은 그 후 1948년 12월 18일 국제연합(UN) 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다. 그 후 생명과 인권을 위한 선언들이 제정되어 오다 2005년 10월 19일 유네스코에서 국제사회 모든 국가가 함께 지키기로 약속하는 선언이 채택된다. 바로 ‘생명윤리와 인권에 관한 보편 선언’이다.

인류가 지켜나가야 할 생명윤리와 인권사항들을 모든 나라가 따르기로 한 것이다. 생명의료윤리란 현대의 생명과학 기술의 발전과 그 결과로 발생되는 문제들에 맞서서 인간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을 때 바로 내가 보호받지 못하고 더 나아가 인류 전체가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모든 건강에 관한 문제에 의사가 함께하게 된다. 사르트르는 인생을 “B와 D사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Birth와 Death 사이의 ‘C’ choice(선택)를 하면서 살아간다.

어떤 선택이 윤리적으로 올바른 선택인지를 알고 살아야 할 것 같다. 지식이 없이는 행동이나 판단을 올바로 내리기가 힘들다. 전문가들에게 윤리교육이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 잘못된 윤리의식을 가진 전문가는 사회적으로 큰 무리를 일으킬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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