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0일 OOO님이 임종을 하셨다. 이 환자분은 처음부터 우리 병원을 다니던 환자는 아니었다. 타 병원에서 담낭의 악성종양을 진단받고, 몇 년간 치료를 받아오던 중 올해 성모병원으로 오신 종양내과의 한 교수님이 유명하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본원을 찾았다.

말기 암으로 통증조절 치료를 받고, 어느 정도 통증이 조절되자 가정간호를 받기로 하고 퇴원을 했었다. 그리고 9월초 다시 응급실을 통해 입원을 했다. 복수가 차고 구토가 심하여 아무것도 먹지 못해 야윈 모습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으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저렇게 야윈 모습이 되었을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수액을 하루에도 3~4개씩 맞으며 복수를 매일 3리터씩 빼야하는, 금방이라도 상황이 나빠질 것 같은 상태였지만 환자는 생각보다 씩씩하게 병원생활을 했었고, 어느새 간호사들과 친한 사이가 됐다. 환자는 남편과 아들이 번갈아가며 극진히 간병했다. 처음에는 환자분의 아들이 팔에 커다란 문신을 하고 있고 차가운 인상이여서 거리감이 느껴졌지만, 아픈 어머니께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늘 보살피는 모습을 보고 그런 오해는 금방 사라졌다.

어느 날 오전 순회를 돌고 있을 때 OOO님이 나를 부르셨다. ‘통증이 심해서 진통제를 원하는 걸까? 진통제가 언제 마지막으로 들어갔지?’하는 생각을 하며 다가갔는데, 그분 아들이 종이컵에 딸기우유를 한잔 부어주었다.

“안초롱 선생님, 아침 식사도 못하셨죠? 시골에서 유기농으로 저희가 직접 재배한 딸기로 만든 거예요.” 환자분이 자꾸 권하여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음료를 받아 나왔다. 나중에 알았는데 간호사가 바뀔 때 마다 직접 재배한 과일로 만든 쥬스를 만들어 주시고 계셨다.

종양으로 인해 힘들어 환자를 드리려고 가족이 직접 재배한 유기농 딸기를 우리에게 고생하고 감사하다며 이렇게 나누어 주고계시니 그 마음에 너무 감사할 뿐이었다.

추석 연휴 나는 밤번 근무를 하게 됐다. 추석이라 산부인과나 다른 소화기 내과 환자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고 외출을 했지만 607호의 종양내과 환자들은 집으로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조금은 서글픈 추석 연휴를 맞이하고 있었다.

밤 12시 경 환자는 “구토를 계속해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어제도 잠을 한숨도 못 잤어요”라며 내게 도움을 청했다. 밤 10시에 주사를 맞았지만 증상이 좋아지지 않고 힘들어 하셔서 주치의에게 연락을 한 후 항구토제를 주사하고 상태를 관찰하였다.

새벽 1시가 넘도록 증상이 좋아지지 않아 잠을 주무시지 못했고, 이를 지켜보는 보호자와 나도 애가 탔다. 환자가 겨우 잠들기 시작 한 새벽 4시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주 가서 상태의 변화를 확인하고 불편 사항을 가능한 빨리 해결해 드리는 것이었다.

환자는 상태가 계속 악화 되어 숨을 몰아쉬면서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 호스피스 병실로 옮기셨다. 매일 출근을 할 때마다 호스피스 병실에 가서 오늘은 잘 지내셨는지 안위를 걱정하며 지내던 어느 날, OOO님의 임종소식을 듣게 되었다.

장례식장을 찾아갔다. 영정 사진 속에는 환한 얼굴로 웃고 있는 OOO님이 계셨다. 눈물이 하염없이 났다. 환자분의 남편은 수고했다며 눈물을 참지 못하는 나를 오히려 위로하셨고, 아드님도 울먹이며 그동안 감사했다고 여기까지 찾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우리 병동에 말기 암 환자들이 많이 입원하면서 때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암과 싸우며 삶을 지켜가는 그분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진심으로 환자들을 돌봄으로서 결국에는 내 자신이 성숙해 가고 있음을 느낀다.

안초롱

여의도성모병원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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