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남수단의 오지 ‘톤즈’ 마을에서 의사·교사·신부·밴드마스터로서 절망속의 원주민들에게 봉사의 삶을 불꽃처럼 태우며 살다가 대장암으로 지난해 1월 48세의 나이로 선종(善終)한 이태석 신부를 가만히 눈을 감고 그려본다.

수단은 영국 지배하에 오래 있었고, 20년에 걸친 내전이 할퀴고 지나간 뒤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개척할 일은 태산같이 많은 곳이었다. 필자는 12대 국회의원 재직 시 의원사절단의 일원으로 지난 1987년 수단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화이트나일과 블루나일강이 합치는 곳에 위치한 수단은 1년에 한두 번 밖에 비가 안 내리는 극도의 가뭄 속에 사는 나라인데, 필자가 수단을 잊지 못함은 수단공항에 한국국회의원들이 내리던 그날따라 제법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축복의 단비를 가져온 대한민국 국회의원 환영’이란 플랜카드(수단 국회에서 준비)를 든 채 비를 맞고 서있던 남루한 옷차림의 수단 국민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그때 당시 정당만 해도 수단은 수십 개가 난립해 있었고, 필설로 다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전쟁과 가난과 질병으로 얼룩져있던 나라였던 것을 현지에서 목격한 바 있었다. 낮 기온이 50도가 넘고, 전기나 전화는 커녕 반경 200㎞ 이내 50만명이 살지만 하루에 옥수수죽 한 끼가 전부인 굶주림과 목마름의 땅이었다.

또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다. 필자가 긴 여행 시간으로 잠에 곯아 떨어진 시간인데, 목에 뭐가 스멀스멀 기어가는 이상한 감을 느껴 불을 켜고 봤더니, 도마뱀 새끼 두 마리가 목에서 툭 떨어졌다. 웨이터를 불러 항의했더니 수단에서는 도마뱀을 길조의 동물로 여긴다고 그냥 두라고 했다.

이렇게 희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남수단의 오지 ‘톤즈’ 마을에서 쫄리 선생(현지인들이 그의 세례명인 요한(John)과 성(Lee)을 붙여 애정과 존경의 마음을 담아 부른 이름)은 아침에 눈떠서 잘 때까지 한센병마을을 찾아 환자들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쫄리 선생은 80여개 마을을 돌며 예방접종으로 600~700명의 한센병 환자를 구했다.

이태석 신부는 톤즈에 병원과 학교와 성당을 하나씩 지었다. 그 자신이 몇 차례 말라리아로 고통을 겪었고, 그런 과정을 통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환자의 눈동자와 걸음걸이만 봐도 무슨 병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또 병원을 오지 못하는 환자를 위해 고물 지프차를 몰고 오지를 누비기도 했다.

부산 인제의대를 졸업한 의사인 이태석 신부는 나이 40세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사제 서품을 받고서는 아프리카 남수단으로 직행했다. 피땀 어린 정성과 기도와 봉사로 점철된 삶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고 이태석 신부가 선종한지 1년을 기해 그의 영면을 슬퍼하며 추모하는 음악회가 지난 1월 8일 과천 시민회관에서 열렸는데, 음악회 명칭은 ‘슈쿠란 바바’(톤즈마을 부족언어로 ‘하나님 감사 합니다’의 뜻) 였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라는 아프리카 청년들의 한국어 노래합창에 관중도 뜨겁게 따라 부르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태석 신부가 2009년 펴낸 책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와 그의 사후에 나온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는 수단의 영원한 성인(聖人) ‘앨버트 슈바이처’ 박사를 연상시키는 순도 100% 한국인 의사 성직자로 기억될 것이다. 지금도 영화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영원히 쫄리 신부를 배웅하는 톤즈 브라스밴드의 악기 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이태석 신부의 선종이후 수단 어린이 장학회 회원이 2000여명에서 1만4000여명으로 늘었고, 후원자도 800명에서 4000여명으로 증가했다. 그의 제자 중 수단에서 한국에 유학 온 토마스 타반, 존 마옌 등도 앞으로 이 신부의 뜻을 이을 의학도로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신부는 생전에 “가진 것 하나를 열로 나누면 우리가 가진 것이 십분의 일로 주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 하나를 열로 나누었기에 1000이나 1만으로 부푼다는 하늘나라의 참된 수학(數學), 끊임없는 나눔만이 행복의 원천임을 배우게 된다”고 했다.

끝으로 이태석 신부의 거짓 없는 인생관을 그의 글에서 본다. “인간생명의 고귀함을 모르는 ‘무식이’는 분명히 유죄다. 무식이 자신도 유죄이지만 무식이를 가르치지 않은, 그리고 무식이가 배울 수 있도록 여건을 허락하지 않은 우리 ‘유식이’도 무죄라고 발뺌할 수 없다”고 했고, 또 “내 삶의 향기는 어떤 향기일까? 얼마나 자기장을 지닌 향기일까? 내 스스로가 맡을 수도 없고, 그 세기도 알 수 없지만, 그 향기에 대해 내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삶에 향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태석 신부는 1년 전 유언에 “나는 평화로우니까 걱정 말라”면서, ‘Everything is good(모든 게 좋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거룩한 참 사랑의 힘은 시공(時空)을 끝없이 초월하는 것이 아닐까?

박성태

대한의사협회고문

12대 국회의원

한국의약평론가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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