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나라 러시아 -

열 몇 개의 신생국이 떨어져 나갔는데도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나라다. 서쪽으로는 발틱

김일훈

在美 내과 전문의

의사평론가

해를 통해 대서양을 바라보며 동으로는 우랄산맥을 거쳐 시베리아 벌판으로 이어져 아세아의 태반을 덮으며 베링해협에서 끝난다.

이렇듯 넓고 넓은 땅을 하루 종일 달려야 600마일이니 우리 한국 거리로 3000리이며, 이보다 몇 십배 달려야 대륙횡단이 될까 말까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광경도 천편일률적이라 할까, 가도 가도 백화(白樺)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경치뿐, 너무나 단조로운 풍경이다. 비행기로 큰 도시 몇 군데만 구경하면 되는 일이지, 육로 여행하느라고 고생을 사서한다고 불평하는 동료도 있다. 사실이기도 하지만 그래서야 어찌 러시아를 다 봤다고 하겠는가.

러시아는 지금 개인 소득 100달러의 후진국이다. 그런데도 젊은 러시아 안내자는 자랑하기를 “이 나라는 세계에서 제일 가는게 많습니다. 첫째는 영토이고, 다음은 석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목재 소유량입니다”라고 땅 덩어리가 큰 것에 대한 그네들의 자존심은 아직도 살아 있다.

러시아 초창기에 우랄산맥 쪽으로 진출하여 대러시아의 기초를 닦은 황제(이반 4세 1533~1584)는 독재자 스탈린이 가장 숭배하던 인물이며, 스탈린은 “이반 황제야말로 위대한 통치자며 러시아 통일을 이룩하고 나라를 지킨 우리의 선구자”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그리고 큰 러시아를 위해 근대국가의 기틀을 잡은 사람은 피터대제(大帝. 1682~1725)이며, 그는 예나 지금이나 러시아인이 가장 자랑하는 인물이어서 러시아 도처에 그의 동상이 있고, 고궁 여러 곳에 그의 초상화가 장식되어 있다.

그는 키가 7척이나 되는 거인이었으며 크고 위대한 것만을 찾는 호탕한 황제로서 러시아의 대자연이 만든 인물답게 러시아의 꿈을 역대 황제들에게 물려준 바로 대러시아의 상징적인 존재인 셈이다(옛 수도 ‘피터스버그’는 그의 이름에서 나옴).

러시아에는 큰 건물들이 많다. 모스크바나 피터스버그에서 필자가 묵은 호텔은 객실이 1000개가 넘는 큰 건물이었다. 방값이 하루 200달러인데도 한더위에 에어컨이 없다. 웅장하게 지은 모스크바 대학을 보고 놀랐다. 거대한 Gothic Skyscraper가 하늘 높이 우뚝 솟아 있다.

스탈린이 “아주 크게 지어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겁준다는 말을 상아탑에 와서도 느꼈다. 무조건 큰 것, 그것이 피터대제에서 스탈린에게 내려온 전통이라고 한다. 크기로 세계 최대인 모스크바 대학은 질적으로는 최하일지도 모른다. 그곳 입학시험 합격자에겐 수업료가 면제되지만 불합격자도 한 학기 500달러 정도를 내고 등록해서 공부할 수 있는 곳이라 한다.

러시아의 상징인 크렘린을 비롯한 여러 고궁과 사원(Cathedral)과 박물관들도 웅장하기 이루 말할 수 없고 이러한 고색이 창연한 역사물들은 서방 어느 곳보다 크고 호화롭다. 약소국가에서 약탈해온 보물들과 귀족 부호들이 수집한 세계 명화들이 ‘푸쉬킨’과 ‘허미테지’ 박물관 내에 가득 차 있다.

돈이 필요한 현 러시아 정부는 91년도에 이 곳 미술품을 서방세계에 빌려주어 미국에도 선보였던 일이 기억에 새롭다. 전쟁 때에도 이들 보물만은 잘 철수해서 보존할 만큼 그네들의 문화재관리는 철저하다.

박물관에 비치된 역대 왕족의 사치품을 보면 놀라 자빠질 정도이다. 없는 주제에 최대와 최고만을 자랑하는 것이다. 다이아몬드 보석 몇 천개를 박았다는 황제의 의자와 여왕의 옷을 보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인 막심 골키는 “시민들이여! 이 보석 한 개라도 손대지 말라! 이 모든 것이 대들의 역사요, 자랑이노라”고 비꼬았으니, 어진 백성은 과거의 영광으로 헛배만 채우고 물러나라는 뜻이다.

춘향전에 나오는 “주지육림(酒池肉林)은 만혈고(萬血膏)”라는 국민의 희생을 보고도 남았다. ‘피터스버그’의 하궁(夏宮)에는 대러시아를 이룩한 큰 싸움, 즉 터키 전쟁, 나폴레옹 전쟁과 스웨덴 전쟁 등의 전승기념 벽화가 거창하게 장식되어 있다.

조선반도와 접경한 러시아는 한국말년 우리 국민에게도 무서운 존재였다. 그래서 “아라사(러시아)군이 온다”고 하면 아기의 울음도 멈추게 했다는 것이다. 그 많은 벽화 가운데 저 유명한 러·일전쟁의 것은 하나도 없다.

“일본에 패전한 그림은 왜 없는가?” 물었더니, “자랑할 것만 알리는 것이 역사”라고 대답한다. 과거 역사가 그랬다는 말일 것이다.

그들이 앞으로 발전하려면 실패한 역사에서도 많이 배워야 할 것이다. 큰 나라, 강한 나라라는 허세를 유지하려던 러시아는 앞뒤가 맞을 수 없었다. 그 결과 백성은 아나키요, 비뚤어진 니체보 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군자는 “해서는 안될 일이 있다”고 한 말이 있지만, 러시아의 역대 군주와 독재자들은 터무니없이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되어 그 광대한 지역을 방위하기 위해 대규모 군사력을 유지한 나머지 일반 국민은 죽지 못해 살아온 것이다.

노벨상 수상작가 솔제니친은 “러시아 영토는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노자(老子)의 말에도 “소국과민(小國寡民)이 이상향(理想鄕)이라 하지 않았던가?

모스코바대학 앞에서 필자 부부.

러시아인의 우상인 피터대제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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