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전인수(我田引水) 그리고 적반하장(賊反荷杖), 잘은 모르지만 세계적으로 이와 비슷한 의미를 지는 말이 없는 나라가 있을까? 아마 필자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번쯤은 이런 상황에 맞닥뜨려 황당함을 경험했을 것으로 본다.

의사의 입장에서 치료를 할 때 환자와의 관계는 약을 쓰는 지식과 동등할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항상 웃으면서 환자를 대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최근에 환자분과 싸운 일이 있었다.

약을 대리처방 받기 위해 오신 분이 있었다. 명백히 이는 의료법 위반이며, 우리나라에서는 환자가 치매나 뇌졸중 등으로 이동이 불가한 상태에서만 의사의 판단 하에 대리처방이 가능하다고 되어있다. 따라서 “환자분이 거동이 불편하시냐”고 물었더니, “바쁘셔서 대신 왔다”고 하셨다. “대리처방은 불법이니 직접 방문토록 하세요”라고 말씀을 드렸다.

약 1시간 후 바쁘다던 환자분이 직접 오셨고,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약을 처방해달라고 하였다. 그 환자는 당뇨와 혈압약을 드시던 분으로 이전 처방날짜를 확인하였더니 2주일 이상 약이 남아있어 “약은 1주일 이하로 남았을 때만 처방이 가능하다”고 설명을 드렸더니 “당 조절이 안되는 것 같아서 약을 임의로 더 먹었다”고 하셨다.

“임의로 약을 드시면 안 되고 상담을 했었어야 했으며(원래 이쪽에 오시던 분은 아니셨다), 이런 경우 7일정도 비보험으로 약을 사셔야 한다”고 설명을 드렸더니, 화를 내시기 시작하셨다.

“법이 그렇게 되어있어서 안 된다”고 설명을 해도, 그 환자분은 “안 된다는 것은 원래 아는데 지역사회에서는 그 정도는…” 하면서 억지를 부리시더니, “예전에 군 보건소에서는 됐는데 왜 안 되느냐”며 따졌다. 급기야 “다른 병원은 되는데 왜 너만 안 되느냐. 다른 곳에서 해오면 어떻게 할꺼냐?”라고 협박까지 하시는 것이었다.

“법이 안 되는 거고 난 법대로 할 뿐이다”고 했더니, “그따위로 하지 말라”며 따지는 바람에 필자는 끝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경험이 있다.

필자는 의사로서 그리고 개인으로서 당연히 지켜야할 것은 지켰을 뿐이지만 욕을 먹어야 했으며,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억지를 부리시는 분들이 존재한다. 실제 1차 의료 필드에선, 간혹 알면서도 병원유지를 위해 대리처방을 감수하는 경우가 있으며, 보건소에선 민원 때문에 강요받는 일이 종종 있다.

“대체 지키지 않을 법을 왜 만들어 놓는가?” 물론 개인의 입장에서는 조금 더 편한 것을 찾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자신의 건강과 생명에 연관된 만큼 조금의 불편은 감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러한 것을 조장하고 있는 전시적 포퓰리즘 행정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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