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정 호

강원도 홍천군 남면보건지소 공보의

지난 7월 목포의 한 보건소에서 B형간염 백신접종을 한 8개월 영아가 접종 후 돌연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안타까운 죽음이라는 점에서 그 부모가 받았을 상처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당시 부모들은 예진표 작성 시 한 달 전 중이염과 폐렴을 치료했다는 사실을 기재했으나 의사가 직접 예진하지 않고 간호사가 대신 예진표에 의사를 대리해 기재하고 접종을 실시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예진을 담당한 공보의와 간호사는 최근 의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국과수 및 식약청 감정 결과 영아 사망과 보건소 관계자들의 과실이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의사가 예진만 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왜 간호사는 의사의 결정을 기다리지 않았던 것일까. 수많은 인파로 붐비는 보건소 예방접종실 풍경을 보면 쉽게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하루에 적게는 100여 명, 많게는 수백명의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예방접종실을 찾는다. 일부 수도권지역을 제외하고 공보의가 보건소에 배치돼 예방접종 예진을 맡게 된다. 일부 보건소 측에서는 사업성과 문제 등의 이유로 많은 수의 접종을 실시하기 위해 예진의사를 더 확보하는 대신 임의로 의사가 봐야 할 경우와 외견상 건강해서 그냥 접종하는 식으로 분류하면서 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이번 사고에서도 간호사가 이미 치료가 끝났고 외견상 건강해 보여 단독으로 접종을 실시했다고 한다. 이런 시스템으로 인해 의사의 예진 없이도 예방접종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는 공보의의 의견이 완전히 배제된 시스템이다. 예방접종은 안전을 위해 오전 접종을 주로 하는데, 보건소는 공보의에게 오전 3~4시간 동안 100명에서 수백명을 예진하게 시키고 있다. 이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의료행위이다.

예진표를 읽어본 후 접종자를 진찰, 부작용과 주의사항을 설명한다. 아무리 간단하게 예진을 실시해도 한 명당 5분은 걸리는데 100명을 한 시간에 예진할 것을 보건소는 공보의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해당 사고 보건소의 공보의는 위험한 예진시스템 개선을 요구했지만 보건소측은 이를 무시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는 의료의 질을 위해 의사 한명이 하루에 75명까지만 진료하는 것을 인정하고 그 이상은 보험을 적용하지 않고 공단에 청구하지 못하게 한다.

의료의 질을 생각하는 정부가 공공기관인 보건소에서 행해지는 예진은 이런 규정에서 왜 제외시키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는 지극히 자기모순적인 태도이다. 또 영유아의 경우 성인보다 접종 후 부작용이 일어날 확률이 높기 때문에 해당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직접 진찰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처하는 것이 권장돼야만 하는데, 사업성과 등의 이유로 보건소에 몰려드는 접종자의 수에만 정부는 관심을 두고 있는 실정이다.

보건소에 배치된 공보의들은 적정인원의 예진 수 제한과 해당 전문의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는 시설이 준비된 의료기관에서 예방접종이 실시돼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해 왔다. 정부는 보건소와 달리 적절한 시설을 갖추고 해당 전문의가 있는 민간의료기관에서의 예방접종 지원을 현재 30%에서 100%까지 늘려 일반인들도 경제적으로 부담 없고 안전한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공공의료기관에서 의사의 의견이 배제된 예진시스템도 조속히 개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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