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정호
강원도 홍천군

남면보건지소 공보의

“보건소 아저씨, 독감주사 놔줘요?”

면(面)에서 열리는 5일장에서 가끔 듣는 질문이다. 편한 옷차림에 다니는 길이고 보건지소 밖이니 민원인들이 나를 어떻게 부르던지 그건 그분들 맘이니 ‘의사 선생님’ 소리를 듣지 못해도 크게 서운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똑같이 약 지어줘요.”

가끔 지소에 신규로 오는 환자들에게 듣는 소리다. 다른 곳에서 발급받은 처방전을 가지고와서는 이 약이 잘 들으니 여기서 처방 받고 싶다는 소리다.

물론 환자들이 멀리 다니기 힘든 곳의 병원 대신 가까운 곳에서 진료를 받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다. 다만 가지고 오는 처방전을 살펴보면 심혈관계질환, 전립선질환, 만성기관지폐질환 그리고 고도비만 등 변변한 청진기 하나 없는 보건지소에서는 진찰조차 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런 환자분들에게 나는 질환이 어떠한 상태이고 어떻게 치료해왔는지 진료해주었던 선생님의 소견서가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또 치료를 하면서 여러 가지 검사를 통해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데 현재 보건지소의 시설로는 그런 확인이 불가능해 적절한 대처가 힘들 수 있다고 알려준다.

대개 환자들은 수긍하는 편이지만 '뭐 그렇게 복잡하냐'고 귀찮아하거나 짜증을 내기도 한다. 옆에 다른 의원들도 있는데 어떻게 보건지소에 방문하게 되었는지 물어보면 “다른 병원은 돈을 많이 받는데 보건소(혹은 지소)는 500원이면 되잖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환자들에게 보건지소는 500원짜리 처방전 자판기처럼 보이나보다.

의료급여 대상자들이 비용적인 부담 때문에 지소를 찾는다하더라도 보통 일반적인 보험가입자까지 500원짜리 진료를 받으려고 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의료기관이라고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보건지소에서 진단할 수 없는 질환을 처방전만 보고 진료하는 것은 몇 천 원 경제적 이익을 환자에게 주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정확한 진료나 진단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어 차후 엄청난 손실을 가지고 올수 있다는 것을 환자들이 알고 적절한 의료기관을 방문했으면 한다.

500원짜리 처방전 자판기가 되어 편하게 지내는 것보다는 싫은 소리를 환자들에게 듣고 똑같은 소리를 수없이 반복해야 하더라도 정확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설명하고 안내해주고 있다.

무심코 지나쳐 병을 키운 환자가 누군가의 부모님, 어쩌면 내 친구의 할아버지, 할머님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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