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주원

서울역 무료진료소

‘다시서기센터’ 공보의

요즘 도시형 보건소에 대한 의료계의 불만들이 많다. 도시형 보건소뿐 아니라 지방에 개설된 보건소, 보건지소 또한 마찬가지다. 특히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는 보건소와 주변 민간 의료시설과의 불필요한 ‘경쟁’에 대한 우려감이다.

주민 편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토요일에도 진료를 하고 있으며, 심지어 최근 함평군 보건소의 장날 진료는 주변 의원이 주말 진료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시되면서 의사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보건소의 본인부담금은 1500원 정도로, 민간 의원의 약 50% 정도에 불과하다. 60세 혹은 65세 이상에서 본인부담금 없이 무료이며, 약값까지 대납해주는 지역도 있다고 한다. 본인부담금이 1만원 이하면 지방세에서 대납해주는 제도를 이용해 만성질환자들의 처방을 7일씩 처방하는 사례도 종종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지방에서는 보건소와의 경쟁으로 의원이 폐업했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임의로 정할 수 없는 민간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보건소의 저렴한 의료비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보건소는 이렇게 진료업무에 치중함으로써 정작 공공보건 업무엔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밖에 없다.

보건소는 차상위 계층 등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진료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값이 싼 것도 모자라 주말 진료까지 동원하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분명 정치적 이득을 위한 선심성 행정이라는 의문을 품기에 충분하다.

실제 인구 15만명의 어느 지역은 보건진료소 하나당 1억원 이상의 예산이 소요돼 총 연간 30억원 이상을 사용하면서도 지역주민의 원성이 두려워 보건진료소를 통합하는 등의 제도 개선을 전혀 시도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왜곡된 현상으로 개원의와 공중보건의가 반목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지만 현행법상 공보의는 보건소장이나 기관장의 업무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에 진료 종사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보건지소 보건직 공무원들의 급여가 적지 않다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저렴한 의료비로 인해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는 막대한 지방세와 국세를 불필요한 의료비로 낭비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상황이 문제로 제기되는 지금, 국민의 세금이 정치적 목적으로 선심성 행정에 낭비되는 현실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현재 필자가 일하고 있는 서울역 무료진료소는 모든 것이 무료다. 어찌 보면 가격 경쟁력에 있어 최고의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곳 시설은 주변의 병·의원과 전혀 경쟁관계에 놓여있지 않고 마찰 또한 없다. 주변 민간의료기관과 진료 대상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얼마 전 경기도 의사회는 보건소로부터 만성질환자들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민간과 보건소의 영역이 겹치지 않도록 조절하려는 노력에서 이뤄진 결과물일 것이다. 지자체가 선심성 행정에서 벗어나 진료 대상과 업무에 대한 재정비를 감행할 때 국민의 세금은 진정 의미 있는 곳에 쓰일 수 있다.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차상위 계층과 비수급권자에게 필요한 공공의료서비스의 확대는 효율적 예산운영으로 가능할 수 있다. 지역 1차 의료기관의 몰락은 지역의료의 질적 저하를 야기할 수 있기에 과연 어떤 것이 진정으로 지역 주민을 위하는 길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보건소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다시 이뤄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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