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 상면 발효형 에일 사용…알코올 성분 강해
람빅 맥주, 발효 과정서 자연효모•오래된 호프 사용

벨기에는 남한의 약 1/3에 해당되는 면적에 1000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는 유럽에서도 아주 작은 나라 중의 하나이다. 입헌군주국으로 북부와 동부는 네덜란드와 독일, 남쪽은 룩셈부르크, 서쪽은 프랑스와 접하고 북서부는 북해(北海)에 접하고 있다.
이러한 지형학적 위치와 작은 나라라는 특성 때문에 역사적으로 많은 외침을 받아 왔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벨기에의 이러한 특성은 수도 브뤼셀을 유럽연합(EU) 본부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위치하는 국제도시로 만드는 바탕이 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벨기에는 비록 나라는 작지만 정치적 위상에서 뿐만 아니라 맥주 애호가들의 입장에서도 결코 작은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다. 숨어있는 맥주왕국 벨기에는 실로 수많은 맥주 명품들을 생산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애주가들이 놓칠 수 없는 것이 바로 트라피스트 맥주와 람빅 맥주이다.

먼저 트라피스트(Trappist) 맥주에 대해 알아보자. 트라피스트란 말 자체는 1664년 프랑스의 La Trapp에 의해 만들어진 가톨릭 수도회를 말하는데, 철저한 금욕 생활을 생활신조로 한 시토 수도회(Cistercian Order)의 한 분파이다. 트라피스트 맥주란 용어도 트라피스트 수도회에 의해 직접 만들어지거나 또는 감독 하에 만들어지는 맥주에 한정되어 사용된다.
트라피스트 수도회에서 만들어지는 맥주는 과거에는 그 숫자가 많았으나 현재는 벨기에에 위치한 6개의 수도원에서만 만들어지고 있다(흔히 네델란드의 La Trappe 수도원이 포함되기도 하나 공식적인 트라피스트 맥주로 인정되기에는 이론이 많다). 이들 6개의 수도원의 이름을 딴 트라피스트 맥주는 상업적으로 가장 많이 소개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제품인 ① Chimay를 위시하여<사진 1>, ② Orval, ③ Rochefort, ④ Westmalle, ⑤ Westvleteren, ⑥ Achel 등이 있다.

트라피스트 맥주는 앞에서 언급한 6개의 수도원에서 현재 약 20종의 제품이 소개되고 있는데, 모두 상면 발효형 에일(top-fermenting ale) 제품이면서 병 숙성(bottle-conditioned)을 한다. 일반적으로 보통 맥주에 비해 알코올 성분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트라피스트 맥주를 이야기할 때 흔히 혼동될 수 있는 용어에 수도원 맥주(Abbey Beer)라는 것이 있다. 이는 트라피스트 맥주와는 달리 수도원 자체에서 만든 것이 아니나, 흔히 수도원 또는 종교적 상징 등을 상표로 사용하고 있다. 이들 수도원 맥주들 중에서는 특정 수도원과 공식적인 계약을 맺고 제품을 생산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떤 제품들은 이미 없어진 수도원의 이름을 빌려 사용하기도 한다.
정식 계약을 맺고 제품을 만드는 곳도 이름만을 빌리는 것뿐이지 기술적인 제약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들 수도원 맥주들은 대부분 트라피스트 맥주의 맛을 모방하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보다 가볍고 몰트향이 약하다.

한편 람빅(Lambic beer) 맥주는 13세기 이전부터 만들어진 오랜 전통을 지닌 맥주로서 벨기에 젠느 계곡(Senne valley) 근처에서만 만들어지고 있는 맥주이다.
람빅 맥주의 독특함은 첫째로 재료에 있다. 즉 보리(60%)와 함께 약 40% 정도는 싹이 트지 않은 밀(unmalted wheat)을 사용한다. 이 때문에 람빅 맥주는 특유의 샴페인에서와 같은 곰팡내와 함께 시큼한 맛을 내게 된다.
두 번째 특징으로는 1~3년 된 오래된 호프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맥주에 호프 맛이 거의 나지 않는다. 이는 람빅 맥주의 시큼한 맛이 강한 호프 향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어쩌면 가장 특징적일지 모르는 것으로 맥주발효 과정에서 자연 효모(wild yeast)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일체의 인위적인 효모를 사용하지 않고 젠느 계곡 근처에 자생하는 자연 효모만으로 술을 빚는 이 방법이야 말로 딴 곳에서는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람빅 맥주의 독특함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람빅 맥주는 일반적으로 무겁지 않으면서 시큼하면서도 토양 또는 과일 향이 난다. 알코올 농도는 보통 5~6% 정도이다. 그리고 람빅 맥주는 보통 그 자체로는 판매하지 않고, 과일 또는 당분 등을 첨가한 형태로 판매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①고제(Gueuze)<사진 2>, ②크리크(Kriek)<사진 3>, ③프람보제(Frambiose)<사진 4>, 그리고 ④파로(Faro) 같은 제품들이 있다.

트라피스트 맥주와 람빅 맥주는 어쩌면 진정한 맥주 애호가들을 위한 술일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국내에도 일부 제품들이 맥주 전문점 등을 통해 소개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외국에 나가지 않더라고 맛볼 수 있다. 만일 그런 경험을 가진다면 맥주란 술의 무한한 다양성을 경험하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왼쪽 1-1, 오른쪽 1-2>트라피스트 맥주 중에서는 가장 널리 알려진 Chimay 맥주로 레드(7%), 화이트(8%), 블루(9%) 세 가지 제품이 있다. 제품의 명칭은 색깔의 짙은 정도를 나타낸 것이다. 화이트(사진 1-1)는 가장 연한 색깔과 함께 침전으로 인한 탁함으로 밀맥주와 비슷한 맛을 나타내나 강한 알코올 성분과 함께 청량감은 덜하다. 그리고 황갈색의 레드와 보다 짙은 갈색의 블루가 있는데(사진 1-2), 블루의 경우 탄 맛 비슷한 쓴맛이 강하게 느껴진다.

<사진 2>고제(Gueuze)
6개월 된 람빅 맥주와 오래된 람빅 맥주를 혼합시키면 오래된 람빅에서의 효모가 6개월 된 람빅에 존재하는 잔류당에 작용하여 마치 샴페인과 같은 발포성 맥주 고제가 만들어지게 된다.
<사진 3>크리크(Kriek)
6~12개월 된 람빅 맥주를 체리가 든 통에 부어서 혼합하여 만든 제품이다. 이후 수개월 동안 발효가 진행되면서 과일향이 서서히 맥주에 용해되면서 독특한 람빅 체리맥주가 탄생하게 된다.
<사진 4>프람보제(Frambiose)
체리 대신 나무딸기(raspberry)를 사용하는 것 이외에는 크리크를 만드는 방법과 같다. 프람보제란 프랑스어로 나무딸기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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