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영화서 ‘보일러메이커’ 폭탄주 용어 첫 등장

보일러메이커, 위스키를 맥주에 넣어 마시는 것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로 소주를 먼저 꼽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두 번째 술은?”하고 질문을 던지면 그 답변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막걸리가 가장 쉽게 떠오르지만 사랑을 받는 정도로는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복분자주나 오늘의 주제인 폭탄주도 만만치 않는 경쟁상대가 된다.

사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폭탄주가 무엇인가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맥주가 들어있는 큰 컵에 위스키가 담긴 작은 잔을 넣어 단숨에 마시는 폭탄주는 실로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창작(?) 폭탄주들을 양산하면서 애주가들의 끝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폭탄주가 그 부작용에 대한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정서와 맞는 부분이 많아서일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폭탄주는 의례히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술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실제 처음 만들어 마시기 시작하였다는 사람들의 실명이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폭탄주는 우리나라에서만 마시는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처음 개발된 것은 더욱 아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에도 상영된 바 있는 유명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 이다.

이 영화는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감독을 맡은 1992년 작으로, 미국의 저명한 장로교 목사 노만 맥클린(1902-1990년)의 자전적 소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카데미 최우수 촬영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미국 몬타나주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함께 미끼 없이 하는 플라이 낚시줄의 예술 같은 움직임을 배경으로 가족 간의 사랑과 아픔 그리고 인생의 참 의미에 대해 수채화 같은 풍경으로 잔잔히 전해주고 있다.

영화는 1900년대 초반 미국 몬타나주 서부에 있는 작은 마을의 목가적인 강가를 무대로 펼쳐진다. 노만(크레이그 쉐퍼 분)은 스코틀랜드 출신 장로교 목사인 아버지 리버런드 맥클레인(톰 스커릿 분)과 인자한 어머니(브렌다 브레딘 분) 그리고 동생 폴(브래드 피트 분)과 같이 풍족하지는 않지만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아버지는 건실한 목회 활동과 함께 플라이 낚시를 종교와 동일시 할 정도로 심취해 있었다. 그는 낚시와 신앙뿐만 아니라 아들들의 학교교육까지도 스스로 떠맡을 정도로 고지식하면서도 자상하였다.

노만과 폴은 전혀 개성이 달랐다. 둘 다 강하였으나, 장남인 폴이 질서에 순응하며 책임감이 있는 성격이라면 폴은 자유분방하고 체제 반항적이었다.

장성한 노만은 바라던 미국 동부의 대학에 합격하여 영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떠난다. 낚시와 몬타나에 대한 애착이 강한 동생 폴은 ‘아직도 잡아 보지 못한 고기를 잡기 위해’ 고향의 지역 대학에 들어간다. 수년 후 노만은 대학을 졸업한 뒤 고향으로 돌아온다. 폴은 이미 졸업 후 신문기자가 되어 있었다.

노만은 고향에서 제시라는 아름다운 아가씨를 만나고 바로 사랑에 빠진다. 이후 노만은 한 대학으로부터 영문학 강의를 맡아달라는 편지를 받는다. 부모님은 더없이 기뻐하고 제시는 같이 떠나기로 한다.

폴은 여전히 활달했으나 자유분방한 그의 성격은 결국 그를 파멸로 몰아넣는다. 그 당시 그는 도박에 빠져 심각한 빚을 지고 있었다. 결국 노만과 제시가 시카고로 떠나가게 돼 있는 날 아침 경찰서로부터 폴이 총에 맞아 거리에 버려져 있다는 통지를 받는다. 도박에 관련된 타살이었다. 가족의 상실감은 말할 수가 없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노만이 제시와 어머니와 함께 늙은 목회자 아버지의 마지막 설교를 듣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 폴을 그리며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다’라는 말로 폴의 행동에 관계없이 그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표현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늙은 노만이 제시를 포함하여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는’ 사람들을 다 떠나보내고 과거를 회상하며 낚시를 하며 변함없이 흐르는 강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난다.

이 영화에서 폭탄주를 마시는 장면은 노만이 제시에 대한 프로포즈에 성공하고 나서 들뜬 마음으로 술집에 있는 폴을 찾아 왔을 때 등장한다. 노만은 바텐더에게 호기롭게 폭탄주 두 잔을 달라고 한다(“Give us a couple of boilermakers!”). 맥주와 위스키가 나오자 놀라울 정도로 우리와 똑같은 방법으로 맥주 컵에 위스키를 넣고 한숨에 쭉 들이킨다. 마지막에는 빈 위스키 잔을 입으로 무는 세레모니까지 펼친다.

바로 이 장면에서 나오는 ‘보일러메이커(boilermaker)’란 용어가 오늘날 우리나라 폭탄주의 원형이 되는 술이다.

이런 형식의 음주방법은 영국 또는 미국에서 오래전에 만들어져 애용된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으나, 그 정확한 유래에 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다. 보일러메이커라는 용어 자체는 과거 스팀엔진을 만드는 기술자들을 가르치는 말로 1834년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수록돼 있다.

따라서 보일러메이커란 음주방법도 이후에 이들의 직업과 연관돼 생긴 것으로 일반적으로 생각되고 있으나, 일부 관련 학자들은 그 이전에 이미 술을 가르치는 용어로 먼저 등장했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하여 여러 가설들이 소개되기도 하나 정확한 답은 없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정확한(?) 답변일 것이다.

아무튼 보일러메이커의 큰 범주에는 위스키를 먼저 마시고 바로 이어서 맥주를 마시는 방법도 포함시키기도 하나 엄격하게는 위스키를 맥주에 넣어 마시는 것만을 지칭한다. 물론 다 마실 때까지 입을 떼는 것을 금하는 것은 동서고금의 철칙이 되고 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와 같이 한잔의 폭탄주에 흐르는 강물을 관조하는 낭만의 입구에 들어서든지, 아니면 흐르는 강물에 덧없이 쓸려가는 후회의 추억으로 남을지는 결국 당신의 선택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에서 폭탄주는 애주가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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